“남의 글 쓰고 가르치는데 탕진했지만…‘문학교육자’로 불려졌으면 좋을 것” “우리 책이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현대 소설 속에 어떻게 융합돼 있으며, 앞으로 또 어떻게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어요. ‘심청전’은 우리 문학의 큰 뿌리로 구원의 빛이 되고 있는데, 이것을 추적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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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집 ‘한국문학, 연꽃의 길’ |
“심청전을 모티브로 채만식과 최인훈씨는 ‘심봉사’(1936)와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78)라는 희곡을, 황석영씨는 ‘심청’(2003)이라는 장편소설을 썼어요. 또 뮌헨올림픽 때에는 재독 작곡가 윤이상씨가 오페라 ‘심청’(1972)을 공연했고요. 채만식, 최인훈, 황석영, 윤이상씨가 심청전을 모티브로 여러 장르 작품을 창작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죠. ‘심청전’이라는 고전이 세계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한국문학 구원의 길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 거죠.”
모두 6부로 구성된 ‘한국문학, 연꽃의 길’은 최근 잡지 등에 발표한 평론을 모은 것이지만, 제6부 ‘심청전을 위한 문학적 변명’만은 이 책을 위해 그가 특별히 쓴 글이다. ‘심청전’이라는 고전이 어떤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변용될 수 있는지를 고찰한다. 그는 “‘춘향전’은 전북 남원이 무대인 반면 ‘구운몽’은 당나라였다”며 “‘구운몽’은 세계에 제일 알려져 있고, ‘심청전’은 근래에 발굴돼 알려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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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학 교육자로 불리는 게 좋다”고 말한다. |
“풍자 작가인 채만식씨는 심청을 풍자로 사용하죠. ‘심청전’을 비판적으로 해석해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봅니다. 최인훈씨는 시대적 배경을 임진왜란으로 해 심봉사가 심청을 술집에 팔고 심청은 여러 곳을 전전하는 기구한 운명으로 그리죠. 황석영씨는 심봉사가 심청을 팔지만 심청은 상해로 가 큰돈을 벌어 일본 등을 거쳐 인천으로 돌아와 중이 되는 것으로 끝맺어요. 윤이상씨는 오페라에서 심봉사뿐만 아니라 함께 온 모든 맹인이 눈을 뜨는 것으로 바꿔 전 인류의 구원으로 해석하고요.”
그는 그러면서 “현대 문학을 하는 작가들이 세계 무대로 나가려면 고전에 바탕에 두고 나가야 한다”며 “‘심청전’은 이런 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책에는 또 소설가 박완서(1931∼2011)씨의 팔순을 기념하며 쓴 ‘못 가본 그 길이 정말 더 아름다울까’와 ‘소설적 허구에 대한 이청준의 생각 엿보기’, ‘4·19세대와 한국 문학’ 등을 통해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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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집 ‘혼신의 글쓰기, 혼신의 읽기’ |
1962년 ‘현대문학’에 ‘문학사방법론 서설’이 추천돼 등단한 그는 2000년 8월 ‘한국현대문학비평사론’으로 순수저작 100권을 돌파하는 등 문학 최전선에서 왕성한 글 읽기와 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남이 쓴 작품을 읽고 글을 쓰고 가르치면서 인생을 탕진한 사람인데요, 저는 문학 교육자로 불리는 걸 좋아합니다. 최근 국사교과서 수정을 놓고 말썽이 많은데, 이는 집필자들이 시대를 달리 보기 때문이죠. 세대마다 연결할 수 있는 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문학입니다. 문학 작품은 세대를 드러내고 시대를 연결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문학교육자라고 생각해요.”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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