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서 이번 여행은 정말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늘 한번쯤 가보고 싶었던 거제도 포로 수용소이다. 30여년 전 잠시 살았던 거제 고현이 가까이 오고 포로 수용소가 있는 산허리에 아스팔트 시원한 길이 나서 산 위에서 장평 조선소와 고현 시내를 내려다 보게 변하였다.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대한민국에서 평균연령이 가장 젊은 도시 거제시라고 한다. 그 이유는 조선소 직원들이 객지에 모여드니 조선소 직원들이 젊을 수 밖에 없다. 평균연령이 34세라고 하니 정말 젊은 도시가 틀림없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러 산천은 세 번 변하니 혼자서는 어디가 어딘지 찾을 수 가 없다. 조선소 제복을 입고 있으면 어느 식당, 어느 술집에 들어 가도 외상이 통하며 그 대신 월급날엔 외상값 받을 사람들이 회사 앞에 장사진을 이룬다는 믿지 못할 말을 하며, 껄껄 웃는 가이드는 정말 거제시의 왕팬인 것 같다.
삼성 조선은 고현 시내 입구 그 동네 이름이 장평인데, 가이드는 장평이란 이름은 잘 모르고 있었다. 옥포를 지나니 대우 조선소가 얼마나 거대한지 길옆도 아름다운 나무를 심어 잘 가꾸어져 있다. 직원들이 너무 많아서 점심 때 밥을 해온 트럭이 줄을 서서 삽으로 밥을 퍼서 직원들 식판에 나누어 준다고 하며, 나는 아무래도 가이드의 대우 조선소 소개하는 폼이 아무래도 뻥튀기지 싶다.
‘군대도 아니고 무슨 밥을 삽으로 퍼준담’ 대우 조선소 직원이 그런 말을 한다면 믿겠지만 가이드의 허풍 같은 말이 좀 믿기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믿거나 말거나’라고 한다. ‘하하하’ 아무튼 익살스럽고 유머 넘치는 말솜씨 좋은 가이드는 정말 여행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유머가 있는 사람은 어딜 가도 인기이고 대환영이다. 허리가 휘게 웃으면 피로가 싹~날아 간다. 웃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서로 뜯고 상처 주고, 내가 옳다 네가 옳다’며 비판만 일삼는 사람들 보다 늘 긍정적이고 얼굴엔 미소가 가득한 스마일 얼굴은 세상을 밝게 한다. 믿거나 말거나 란 말을 들으니 나도 생각 나는 일이 하나 있다.
내가 30여년 전 거제도 고현 시내에서 헌신하던 시절에 나이 드신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오셨는데 우리 네 명과 같이 포로 수용소가 있는 산으로 등산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은 보이지 않는 영계를 보시는 분인데 모자를 안 쓰셨는데 자꾸 손으로 모자 벗는 흉내를 내며 ‘저리가. 그만해’라고 하신다. ‘왜 그러세요’하니 죽은 전쟁 포로가 권사님 머리 위에 모자를 자꾸 씌라고 하며 머리를 만진 댄다. 우리는 아무도 안 보이는데 말이다. 귀신이 보이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하나 더할까요? 나는 늘 시간이 나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밤에도 남들이 다 자면 촛불 켜놓고 영어 공부를 하곤 했다. 방을 나 혼자 쓰는 것이 아니고 네 명이서 같이 쓰니 전깃불을 켜면, 남들에게 방해가 되니 구석에서 조그만 상을 펴놓고 촛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
그러면 여름에 온 나이든 영통하시는 권사님 왈 “유선생~ 그만 촛불 끄고 자”라고 한다. 왜요? 라고 하면 “뭐시 새카만 게 불이 켜져 있으니 자꾸 방을 들여다 본데 이”하신다. ‘아이쿠 무서워라. 권사님은 그렇게 귀신들이 보입니까’하니 “그럼 귀신이 화장실에도 하나 있고, 아침에 나가면 제복 입은 군인 들이 한이 맺혀 마당에 줄을 서있다”고 하신다.
나는 포로수용소는 물론 다시는 못 가고 화장실도 어두워지면 못 간다. 그리고 밤중에 촛불 켜고 공부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으니 지금도 영어는 통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 그렇게 해서 모르게 변한 거제도 산허리와 장승포를 지나 구조라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라 모두들 밥을 먹어야 하니 해산물이 풍부한 섬에서 해삼·멍게 비빔밥으로 맛있게 한끼를 때웠다. 그리고 바람 때문인지 외도 가는 유람선이 뜨지 않아서 유감스럽게도 외도를 가지 못했다. 그리고 해금강이 있고 바람의 언덕이 있는 곳으로 핸들을 돌렸다.
유노숙 yns5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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