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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월드] 세계금융 쥐락펴락 로스차일드 신화

입력 : 2011-09-24 02:44:00 수정 : 2011-09-24 02: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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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준 움직이는 숨은 권력…현대 글로벌 기업 경영 귀재
요코야마 산시로 지음/이용빈 옮김/한경BP/1만4000원
슈퍼리치 패밀리/요코야마 산시로 지음/이용빈 옮김/한경BP/1만4000원


미국연방준비제도(Fed)를 움직이는 숨은 권력자, JP모건·골드만삭스·HSBC의 대주주,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80%를 생산하는 드비어스 광산을 소유하고 프랑스 최고 와인 5종 가운데 라피트와 무통 2개를 보유한 그룹. 바로 로스차일드가(家)의 얘기다.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한 시오니스트의 맹주이자 ‘세계유대인협회’를 이끌어가는 금융그룹 로스차일드가는 현대 글로벌 기업 경영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가문은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고물상을 하던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1743∼1812)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유대인은 가슴에 유대인 표식을 붙여야 하고 대학에도 갈 수 없고 번듯한 직업은 절대 가질 수 없었던 절박한 삶을 이어간 최하층민이었다. 그렇지만 로스차일드 1세는 ‘선민의식’을 가슴에 새기고 근면절제된 생활로 다섯 아들을 훌륭히 키워냈다. 유대인 랍비였던 그는 유대 경전과 도덕 경전 탈무드를 기반으로 5개 이상의 외국어를 익히도록 자녀들을 교육시켰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고 화폐를 영주들에게 판매하면서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리드리히 2세의 눈에 들어 오스트리아 왕실 재정을 관리하면서 남작의 지위도 받았다. 유대인으로선 감히 누릴 수 없는 영광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글로벌 경영의 기반이 된 것은 워털루 전투였다. 나폴레옹의 패전 소식을 영국 정부보다도 이틀 빠른 역마차를 통해 런던에 전달해 런던의 셋째 아들이 거액을 벌어들이도록 했다. 처음엔 공채를 모두 팔아치우도록 해 공채값이 바닥에 떨어지도록 유도했고, 다시 헐값에 모두 사들이도록 했던 것이다.

로스차일드 그룹이 유대계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를 지원해 공산주의 혁명을 부추긴 사례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전쟁 배상을 위한 빈회의에서 러시아가 합스부르크의 궁정상인 로스차일드 가문을 무시하자, 러시아에 대한 원한을 품게 된다. 이것이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의 불을 지피는 동인이 되었고, 이로 인해 훗날 알렉산드르 왕가는 철저하게 보복당한다. 러일전쟁에서 로스차일드가 일본을 지원한 것도 러시아에 대한 원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빨간 방패’란 의미의 로스차일드가의 성공 요인을 꼽는다면 누구보다도 빠른 정보수단과 근면하고 현명한 처신이다. 프랑크푸르트 본가를 위시해 런던, 파리, 빈, 나폴리에 흩어진 자손들은 유대인 특유의 결속력과 정보력으로 글로벌 경영을 실천했다. 죽음을 앞둔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아들들에게 한 묶음의 화살을 주고는 부러뜨려 보라고 했다. 누구도 화살뭉치를 꺾지 못하자 그는 화살을 하나씩 꺼내 부러뜨리면서 유언을 남긴다. “하나로 묶인 화살뭉치처럼 결속하라. 그러나 서로 멀어지면 부러지는 화살처럼 곧바로 끝날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파리와 런던 분가만 남은 상태이지만 그 영향력은 석유와 다이아몬드 산업, 금융업을 통해 여전하다.

일반 민중의 시각에서 보면 로스차일드 가문의 성공 방식은 절대왕정 시대에나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250여 년을 지탱하면서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경영수완은 아무나 흉내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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