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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철의 영화음악 이야기] ‘일 포스티노(Il Po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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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9-16 04:10:44 수정 : 2011-09-16 04: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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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이탈리아의 외진 섬 음악화 1950년 무렵, 칠레에서 이탈리아의 외딴 섬으로 망명해온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내성적인 어촌마을의 우편배달부 사이의 영혼의 조우를 그린 ‘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네루다가 카프리섬에 체류하던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96년 초 국내 개봉 당시 저조한 흥행성적으로 일찍이 간판을 내렸지만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그해 가을 재개봉되는 기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망명 후 전 세계로부터 쏟아지는 파블로 네루다의 편지를 감당할 전속 우편배달부로 내정된 마리오는 이 대문호와의 잦은 만남을 통해 서서히 시의 세계에 눈떠 간다. 패전 직후 이탈리아 가난한 섬마을에서의 이 사소한 만남은 마리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은유와 사랑, 그리고 시에 대한 대화가 깊어갈 무렵, 영장이 기각되면서 파블로 네루다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네루다의 격려와 조언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얻은 마리오는 계속 그에게 편지를 써보낸다. 네루다가 두고 간 녹음기에 파도와 바람소리, 그리고 별의 웅성거림 등을 녹음해 보내기도 했다. 마리오가 채집한 이 소리들은 그 자신에게는 한편의 시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파블로 네루다가 다시 섬을 찾았을 때 이미 마리오는 공산당 활동의 데모로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촬영 때문에 심장이식 수술마저 미루면서 마리오를 연기한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 또한 영화촬영 종료 12시간 후 결국 4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작품의 극본에도 참여했던 그는 실제로 마리오처럼 열정 하나로 불 같은 생을 마감했다. 서글픈 데자뷔다.

우리에겐 ‘썸머타임 킬러’, ‘장고’, 그리고 ‘킬빌’을 통해 알려진 루이스 바칼로프는 아르헨티나 태생의 이탈리아 영화음악가 겸 피아니스트이다. 본 작에서 그는 품위있고 여유로운 이탈리아의 외진 섬을 그대로 음악화해냈는데, 앨범에 자주 사용되는 반도네온의 경우 연주자의 감정마저 아득하게 감지된다. 여러 변주를 가진 메인테마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에서 주로 리퀘스트됐으며 ‘바이시클’과 같은 곡은 TV CF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따뜻한 스트링과 클라리넷, 그리고 하프시코드를 통해 마리오의 순박한 영혼이 완성됐다. 결국 영화는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해안이 아니더라도 여유로운 풍경에 어울리는, 차분히 여운에 잠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음악이다. 참고로 한국반과 미국반에서는 마돈나, 스팅, 웨슬리 스나입스, 줄리아 로버츠, 에단 호크, 마돈나 등이 직접 낭송하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 또한 감상할 수 있다.

일말의 공통점도 없는 두 사람이 시를 통해 교류하는 풍경을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섬세한 터치로 그려냈다. 프랑스 국민배우 필리프 누아레의 웃는 얼굴과 수줍은 마시모 트로이시의 표정, 나폴리의 깨끗한 바다, 그리고 이 음악들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살며시 스며들어간다. 안타깝지만 결코 슬프지만은 않다.

위대한 시인이 아니더라도 무명의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느낄 수 있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오히려 가끔은 말이라는 것이 불필요할 때도 있다. 마리오의 대사처럼 ‘시는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일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시를 사랑하는, 시를 믿는 사람의 논리다.

불싸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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