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을 잃고 의수에 붓을 끼워 작업하는 석창우(56) 화백. 그는 둘째 아들이 태어난 지 한달 남짓, 갓 스물아홉의 나이에 의류 공장에서 전기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날벼락을 맞았다. 2만2000볼트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과 발가락을 잃어버린 것이다. 13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생사를 오가던 그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당시 4살이던 아들 때문이었다. 아이는 아빠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떼를 썼다. 아빠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아이의 말이기에 더욱 가슴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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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수를 착용하고 그림을 그리는 석창우 화백.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동작들을 운동선수들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
그는 의수에 볼펜을 끼워 참새, 까치를 그려 아들 손에 쥐여 주었다. 손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아빠가 아니라 손이 없어도 뭐든지 하는 아빠이고 싶었다. 아내 곽혜숙(51)씨의 힘도 컸다.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핑계로 남편을 방치하지 않았다.
“삶이란 주체적일 때 의미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삶의 이유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그게 그림이지요.”
아내는 남편에게 그림만 그리라고 등을 떠밀었다. 식사 시간에도 아내는 옆에서 손이 되어준다.
“이제는 남편이 그림만 그리려고 아예 제 손을 숟가락 삼고 있습니다. 의수로 숟가락을 잡으려면 각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붓을 잡으려니 각도가 맞지 않아 숟가락을 포기했습니다. 밥은 하루 세 번 먹지만 그림은 종일 그려야 하잖아요.”
석씨에겐 그림을 배울 스승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화실을 여러 군데 전전했지만 팔이 없어 어렵겠다는 말만 듣다가 다행히 서예가 여태명 교수(원광대)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필법을 익혔다. 서예를 하다가 점차 한지에 먹으로 누드 크로키를 그리는 작업으로 옮겨간 그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피겨스케이팅 은메달리스트였던 미국의 미셸 콴 선수의 연기에 매료되면서 운동선수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은 불편한 몸이지만 그림 속에서나마 운동선수처럼 움직이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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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우 화백이 ‘없는 팔’로 그려낸 그림들. 화가를 대신하여 빙상을 달리고 창을 던지며 춤을 춘다. |
시련과 아픔은 이제 축복이 됐다. 오는 27일 개막하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념부채와 안내 책자에 그의 작품이 당당히 담기게 됐다. 사고 당시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기적이라고 했다.
“아내는 저의 홀로서기를 위해 8년여 동안 수족처럼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남들처럼 생계를 핑계로 저를 좌절케 하지 않은 점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그림으로 자신을 지탱할 즈음에서야 아내는 생계 전선에 나섰다. 지금 부부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내는 남편의 그림자이고, 남편은 아내의 분신이다. 두 사람은 말한다. 부부사랑은 기적을 만들어 내는 요술이라고. 26일∼9월8일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그의 서른번째 작품전이 열린다.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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