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정음악가의 제안을 거절한 채 은둔했던 생트 콜롱브와는 달리 명예에 집착하면서 스승의 딸까지 배신하며 재능을 뽑아내려 했던 마랭 마레의 행색은 묘한 대조를 이뤘다. 명예를 거머쥔 마랭 마레는 결국 스승과 다시금 대면하고 마지막으로 ‘슬픔의 무덤’과 ‘눈물’을 함께 연주하며 스승에게 ‘음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관객들에게도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는다.
1992년도 세자르상 일곱개 부문을 석권했던 본 작은 2010년 6월 급사한 알랭 코르노 감독이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에게 마랭 마레에 관한 시나리오를 의뢰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영화는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와 그의 아들 기욤 드파르디유가 각각 노년과 젊은 시절의 마랭 마레를 연기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기욤 드파르디유 또한 바이러스로 인한 폐렴으로 안타깝게도 2008년 요절한다.
스페인의 음악학자이자 비올라 다 감바의 명인 조르디 사발에 의해 사운드트랙이 완성됐다. 본 작으로 인해 고음악과 비올라 다 감바는 세계적으로 재조명됐으며, 바로크 음악 또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조르디 사발은 몇 차례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다.
대부분 녹음이 남아 있지 않은 생트 콜롱브와 마랭 마레의 악곡들을 담고 있으며, 궁정음악가였던 룰리의 곡 또한 포함하고 있다. 마랭 마레는 대규모 오페라를 작곡하는 것보다는 스승 생트 콜롱브의 음악을 답습하는 비올 연주곡들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화려한 궁정 오케스트라, 그리고 비올의 독주와 클라브생 등을 포함하는 실내악으로 음반은 다양하게 채워져 있으며, 맑은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바로크 가곡들의 경우 조르디 사발의 아내 몽세라 피구에라스의 목소리로 구성돼 있다.
쿠프랭의 ‘어둠의 교훈’의 경우 12분여에 달하는 음원을 앨범에서 감상할 수 있겠다. 몇몇 작자 미상의 구전 음악들 또한 조르디 사발의 편곡으로 수록돼 있으며, ‘즉흥 스페인 무도곡’은 CF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할 것이다. 스승의 환영을 보는 마지막 장면에서 마랭 마레가 연주하는 ‘몽상’ 또한 긴 여운을 남긴다.
가히 18세기 프랑스 바로크의 총집합이라 할 만한 음악적 내용의 다양함과 깊이를 훌륭한 녹음상태로 담아낸 사운드트랙은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영화의 10주년을 기념해 새롭게 마스터링한 버전이 조르디 사발의 음반사 알리아 복스에서 다시금 재발매되기도 했다. 음반은 영화에 삽입되지 않은 다른 곡들까지 덤으로 수록하고 있다.
자연광으로 촬영된 듯 보이는 화면과 음악은 무척이나 수려하다. 그윽한 정취를 머금은 고독과 슬픔의 음색은 적막한 비애감이 감도는 선율을 통해 새로운 세대에게 말을 걸어온다. 깊은 밤, 혹은 맑은 아침의 깨끗한 공기 중에 듣는 본 작은 지친 심신을 조용하게 감싸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시작점 이전, 즉 생명과 빛이 생성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어느 예술가의 짙은 사색, 그리고 탄식이다.
불싸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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