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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의병활동 공치봉 선생, 101년 만의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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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의병활동 공치봉 선생…나라 잃은 치욕에 단식자결

본지 보도통해 세상 알려져…정부,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01년 만의 훈장 추서라….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네요.”

지난 8일 전북 순창군 금과면 방성리. 의병 출신으로 경술국치에 비분강개해 단식 자결한 공치봉(1831∼1910년) 선생의 4대손 공형렬(56)씨는 마냥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제66주년 광복절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의병 출신으로 경술국치 직후 단식 자결한 공치봉 선생의 4대손 공형렬씨가 정부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결정 통보를 받은 뒤 고조부의 묘소를 찾아 활짝 웃고 있다.
순창=장원주 기자
구한말 의병으로 활동하던 선생은 나라가 망하자 조상에게 제사를 올린 뒤 물과 음식을 끊고 순국했다. 선생의 공적은 전북 임실의 유학자 조희제 선생이 항일운동을 펼친 이들의 행적을 수록한 ‘염재야록(念齋野錄)’, 1979년 발행된 ‘대한충의효열록’ 등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정부의 독립유공자 발굴 노력 부족과 후손들의 훈장 추서 미신청 탓에 100여년간 역사 속에 묻혔다. 공씨는 “오래 걸렸지만 훈장 추서가 됐으니 이젠 여한이 없다”면서도 “후손들이 더 똑똑했다면 훈장 추서 신청을 일찍 했을 텐데…”라며 자책했다.

지난해 세계일보 보도(2010년 8월 23일자 참조) 이전까지 공씨는 훈장 추서 신청제도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그는 “농사만 짓고 살다 보니 나라에서 독립유공자에게 훈장을 주는 것을 몰랐다. 세상 일에 똑똑하지 못해 조상의 충절을 바로 모시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했다.

후손들이 못 배운 것은 선생의 자결 후 일본 경찰의 집중 감시 대상이 돼 집안이 풍비박산났기 때문이다. 공씨는 “콩잎으로 죽을 쒀 겨우 연명하느라 학교 갈 형편이 안 됐다. 집안 어른들에게 천자문을 배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공씨는 보도 직후 지난해 10월 광주지방보훈청에 신청서를 냈다.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각종 서류 미비와 자료 부족으로 보훈청에 수차례 들락거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후손들이 간직한 선생의 문집과 배첩마저 한 해 전 화재로 소실된 터였다. 그럼에도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자료를 모았다.

그러기를 수개월. 지난 3일 보훈처에서 “애족장 추서가 결정됐으니 광복절에 전북도청에서 받으면 된다”는 전화가 왔다. 공씨는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순창=장원주 기자 stru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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