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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37> ‘오스트리아 와인’

입력 : 2011-07-22 09:11:34 수정 : 2011-07-22 09: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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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랄 풍부한 포도즙 맛이 살아 있는 화이트와인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떠난다면, 빈 시내로 진입하면서 무슨 이미지를 떠올릴 것인가? 영세 중립국, 알프스, 모차르트 등을 떠올리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떤 이미지가 눈에 들어올까. 아름다운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이런 풍광을 기대했을 게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랐다. 화학 회사의 웅장한 콤비나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그게 오스트리아의 힘일지 모른다. 산업의 첨단화로 선진국의 삶을 영위하며, 자연 환경은 철저히 보호하여 풍요롭고 윤택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힘 말이다. 음악과 미술의 도시 빈은 이름에 걸맞게 둘러볼 데가 참 많다. 꼬마기차에 올라 시내를 둘러봐도 좋고, 쇤브룬 궁전이나 벨베데레 궁전을 산책해도 좋다. 화려한 궁전과 정돈된 정원에서는 800년 동안 여러 국가를 통치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세가 느껴지기도 한다.

다뉴브 강변의 뒤른슈타인 마을 뒷산은 온통 포도밭이며, 산 정상엔 사자왕 리처드가 한때 감금되었던 고성이 있다.
매년 방문하는 빈에서 예외 없이 이런 말을 듣는다.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살지 않습니다.” 들을 때마다 크게 웃지만 그만큼 오스트리아의 정체성이 분명하진 않다는 의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혼동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하는 말이다. 둘은 말을 비슷해도, 뜻은 다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영어로 ‘남쪽의 땅’이고, 오스트리아는 독어로 ‘동방제국’이란 뜻이다.

그럼 오스트리아 와인은 어떨까. 많은 이들은 “오스트리아 와인도 있나요”라고 반문하지만, 오스트리아에는 좋은 와인이 많다. 오스트리아 와인의 세계는 품질은 충분하나 수량이 부족하여 와인 애호가들에게조차 생소한 것이 현실이다. 독어를 쓰기에 라벨 읽기도 만만치 않은 점도 단점으로 작용한다. 축구와 마찬가지로 와인에서도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의 그늘에 가려 오스트리아는 ‘와인의 구세계’로 불리는 유럽에서 변방에 속한다. ‘새로운 구세계’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무명 국가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 와인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영국 와인의 지성을 대변하는 잰시스 로빈슨은 “오스트리아의 포도 그뤼너 펠트리너(Gruner Veltliner)는 화이트 버건디의 대안 중에 하나다. 잘 만들어진 순수한 맛을 지닌 풀 보디의 개성 있는 화이트 와인을 원한다면, 그뤼너 펠트리너를 구해 보라!”고 했다.

2007 세계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스웨덴의 안드레아스 라르손(Andreas Larsson)은 그뤼너 펠트리너를 좋아해서 “재료의 특성을 살린 자연스런 음식에는 오크 향 대신 포도 즙 맛이 살아 있는 와인이 잘 어울리는데, 그런 와인으로는 그뤼너 펠트리너가 제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5년도 영국 잡지 ‘와인 인터내셔널’이 주최한 소믈리에 첼린지에서도 우승했는데, 그가 고득점을 한 배경에는 오스트리아 와인이 있었다. 산도가 높고 산뜻하며 풍성한 과일 향의 블라우프란키시(Blaufrankisch), 그리고 미네랄이 풍부하고 질감이 투명한 그뤼너 펠트리너를 추천한 것이 심사위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휜칠한 키와 깔끔한 용모도 그의 강력한 무기인 것 같다. 2002년 런던에서는 오스트리아와 부르고뉴의 와인 시합이 있었다. 거기서도 그뤼너 펠트리너는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을 제압하여 명성을 얻었는데, 블라인드 테이스팅 결과 7대 0으로 그뤼너 펠트리너가 휩쓸었다. 

중심가 그라벤 거리에서 빈 시민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관광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가운데 건물 슈테판 성당이 최신식 건물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오스트리아 최대 와인 생산 지역은 바인피어텔(Weinviertel)이다. 빈 북쪽에 위치한다. 한때 벌크 와인(병에 담긴 와인이 아니라 대용량 통에 담긴 와인으로 아주 저렴하며 상표가 없다. 먼 곳으로 운송할 때에는 유조선의 탱크로 운반하기도 한다)을 주로 생산했으나, 요즘 고품질 와인으로 거듭나려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주로 그뤼너 펠트리너가 재배되는데, 2003년에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DAC가 지정되었다. 이 곳의 명소는 슐로스 호프(Schloss HOF)이다. 사보이 왕자 오이겐의 거처였으며, 이후로 마리아 테레지아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드넓은 곳이다. 성의 내부에서는 때에 따라 특별 텐트가 설치되어 오스트리아의 향토 음식 슈니첼(Schnitzel)을 직접 만들어 보이는 행사도 한다. 송아지 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겨낸 음식으로 맛이 아주 담백하다. 이 요리에는 굳이 레드 와인만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오스트리아의 명산지는 바하우(Wachau)이다. 다뉴브 강가 언덕에 위치한 바하우에는 뒤른슈타인이란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뒷산에는 그 유명한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유배 시절에 지내던 성도 있다. 와인 애호가들이여, 사자왕 리처드 1세가 누구신가. 바로 보르도 여공작과 헨리 2세가 결혼하여 얻은 아들이 아니던가. 십자군 원정을 떠나 이슬람의 살라딘과 휴전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용맹성으로 사자왕이라 칭송받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리처드 1세는 프랑스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어를 못했다. 로빈후드가 활약하던 때와도 겹치는 시절이다. 그때 보르도는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에 속해 있었다. 리처드 1세는 동생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신분을 위장하고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던 중 1192년 오스트리아의 군주 레오폴트 5세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어 뒤른슈타인 성에 감금되었다. 군주는 사자왕을 사로잡은 대가로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15만 마르크를 요구하였고, 그 돈으로 은주화를 만들어 부강의 발판으로 삼았다. 역사서에는 군주가 인질의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조폐공사의 기초를 닦고 빈의 성벽을 강화했으며, 비너 노이슈타트를 포함하여 두 개의 도시를 건설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너 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는 ‘빈의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오늘날 오스트리아 와인은 무척 낯설다. 프랑스 와인 편식에 빠져 있던 우리가 이제 조금씩 와인의 다양성에 눈을 뜨고 있다. 친한 친구와 부담 없이 즐길 만한 와인을 한 병 추천해 달라면 오스트리아 와인을 권한다. 다뉴브 강의 잔물결이 잔 속에서 흘러 넘치며, 모차르트의 재치와 클림트의 열정이 녹아 있는 오스트리아 와인을 이 여름에 권한다.

와인저널리스트·‘라이벌 와인’ 저자

◆추천 관광지…와인 박물관 로이지움
랑겐로이스 마을에 있는 와인 박물관 로이지움( www.loisium.at)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빌바오 구겐하임의 프랑크 게리를 연상케 하는 입체 이미지 덩어리가 포도밭에 덩그러니 서 있고, 그 땅 아래 조성된 박물관이 로이지움이다. 호텔, 레스토랑, 박물관 등의 복합공간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내리는 순간 상상력이 가득한 체험 박물관이란 소개를 받는다. 형형색색의 물줄기가 분수에서 터져 나오며 와인의 신 바쿠스가 등장한다. 음악을 타고 연못 속에서 부상하는 그의 입에서는 한줄기의 물이 뿜어져 나오는데, 이 물이 조명을 받아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레드 와인으로 변한다. 마치 성경에서처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고양이 조각이 붙은 오크 통이 진열되어 있는 방도 있다. 잘 익은 포도가 담긴 통은 발효 중에 발생하는 열이 높아 고양이가 그 위에 앉길 좋아한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 추천 레스토랑…그리헨바이슬
빈에 가면 그리헨바이슬( www.griechenbeisl.at)에서 먹어야 한다. 모차르트, 베토벤, 파바로티, 마크 트웨인처럼 말이다. 이 식당은 1447년에 개업했으니, 한글이 반포된 지 꼭 1년이 지났을 때다. 이곳에서 이왕 먹을 바에야 마크 트웨인 방을 구하라. 금연방에다 에어컨도 없어 답답한 기분이 드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5월 중순의 날씨에도 부채가 필요할 정도다. 특히 그맘때 제철 음식인 아스파라거스 수프 먹을 땐 땀을 뻘뻘 흘렸다. 하지만 이 방은 그런 더위 쯤이야 하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관광객들로 항상 만원이다. 마크 트웨인 방은 마크 트웨인의 방문으로 작명된 것이지만, 방 사방 벽에는 이 식당을 거쳐간 다른 스타들도 많다. 벽엔 그들의 서명들이 가득하다. 웨이터는 긴 막대기로 벽을 짚으며 이게 베토벤, 이게 모차르트의 서명이라고 알려준다.

그들이 먹은 음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수육 같은 타펠슈피츠, 돈가스 같은 비너 슈니첼 등이 단골 메뉴이다. 각별히 맛이 있다고 하긴 어렵지만, 거장들이 즐기던 음식을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먹는 기분만은 각별하다. 우리나라 인물 서명도 있으니 찾아보기 바란다. 식당은 빈의 중심 슈테판 성당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플라이슈마르크트 거리에 있다. 이 거리는 마장동 같은 육류시장이 있었던 자리이다. 식당 이름의 ‘그리헨’은 그리스를 뜻하며, 그리헨바이슬은 결국 ‘그리스 선술집’이란 말이다. 식당 옆에는 아직도 이국적인 건축양식의 그리스 정교회가 있으며, 15세기 당시 이 곳 주변은 그리스 상인 거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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