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고려사 권 81~83)는 고려시대 병제(兵制)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료이다. ‘병제(兵制)’, ‘숙위(宿衛)’, ‘진수(鎭戍)’, ‘참역(站驛)’ 등 3권에 걸쳐 총 13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병지는 고려시대의 군사조직과 그 변천 과정 등 당시 군사제도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 사학자인 이기백이 심혈을 쏟아 완성한 ‘병지 권1’에 대한 역주와 그의 제자 김용선이 뒤이어 완성한 ‘병지 권2’와 ‘병지 권3’에 대한 역주이다. 이기백이 ‘고려사 병지 역주 1’을 1969년에 출간한 이래로 4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국내 최초의 ‘고려사’ 병지 전3권에 대한 역주본이 완성된 것이다.
두 저자는 철저한 직역주의를 원칙으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사료가 빈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려사’ 내의 다른 기사나 ‘고려사절요’ 등 다른 역사서와의 치밀한 대조를 통해 고려시대 병제의 원형을 복원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책 ‘고려사 병지 역주’는 단순한 역주를 넘어 “고려의 군사제도를 하나의 단순한 제도가 아닌 위로는 정치 권력과 연결되고, 아래로는 사회의 기층에까지 관련을 가지는 문제”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큰 책이다.
◆‘고려사’ 병지는 어떤 책인가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 군사제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는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를 들 수 있다. 병지는 고려시대의 군사조직과 그 변천 과정 등, 당시 군사제도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고려시대 군사제도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사료라 할 수 있다.
조선 문종 원년(1451)에 편찬된 이 책은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로 총137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이 중 ‘병지’는 권81∼83의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사’ 병지는 3권에 걸쳐 13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이 ‘병제(兵制)’, 권2가 ‘숙위(宿衛)’, ‘진수(鎭戍)’, ‘참역(站驛)’, ‘마정(馬政)’, ‘성보(城堡)’, ‘둔전(屯田)·부附 병량兵糧)’, 권3이 ‘간수군(看守軍)’, ‘위숙군(圍宿軍)’, ‘검점군(?點軍)’, ‘주현군(州縣軍)’, ‘선군(船軍)’, ‘공역군(工役軍)’으로 되어 있다.
병지는 기본적으로 사료의 집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록된 기사의 형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구체적 연대 없이 부대의 편성이나 조직 등을 일람표 형식으로 제시한 것과 구체적인 연대가 밝혀져 있는 기사들이다. 그러나 연대기적 기사도 항목에 따라 고려 전기나 후기에 치우쳐 있어 고려시대 군사제도를 완벽하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병지 편찬자도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종전의 사적史籍이 자세하지 못??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병지에 실린 이들 기사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료를 통하여 부족하거나 빠진 부분을 메우는 까다로운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고려사’ 병지의 역주가 갖는 의미는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 사학자 이기백(李基白·1924∼2004)이 심혈을 쏟은 ‘고려사’ 연구 중 그가 남긴 ‘병지 권1’에 대한 역주와 그의 제자 김용선(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이 완성한 ‘병지 권2’와 ‘병지 권3’에 대한 역주를 모은 것이다. 이로써 1969년 ‘고려사 병지 역주 1’이 첫 출간된 이후 4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고려사’병지 전3권에 대한 역주가 완성된 것이다.
기존에 출간되었던 북한의 ‘고려사 역본’(사회과학원 고전연구실 편, 1963)과 동아대학교의 ‘역주 고려사’(동아대학교 고전연구실 편, 1971년)는 ‘고려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반해 이 책은 '병지'에 대한 역주만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두 저자는 철저한 직역주의를 원칙으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사료가 빈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려사’ 내의 다른 기사나 ‘고려사절요’ 등 다른 역사서와의 치밀한 대조를 통해 고려시대 군사제도를 추적해나가고 있다. 원문에 충실한 직역을 위주로 했지만 현대문으로 번역했고, 주해는 사실(事實)의 역사적 설명을 주로 하되 과거의 학설과 더불어 본인들의 견해도 밝히고 있다.
◆40여 년을 뛰어넘어 완성된 스승과 제자의 연구
평소 이기백은 자신의 연구 역정에 있어서 제도사적인 면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 ‘고려사’연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그가 1969년 출간한 ‘고려사 병지 역주1’은 제도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주요한 업적으로 평가받았지만 그는 생전 병지 권1의 서문과 병제만을 역주하였다. 따라서 병지 전체에 대한 역주는 40여 년의 세월 동안 미완인 채로 남게 되었다.
이기백의 별세 후 ‘고려사’ 제지(諸志)의 역주 작업을 연구 과제로 선정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이기백의 제자 김용선에게 병지의 역주 작업을 제의했고, 학문적 중요성은 물론 스승의 유업을 잇는 의미에서 김용선은 병지 권2와 권3에 대한 역주를 완성하였다. 김용선은 역주의 작업에 있어서 “특히 (선생의) 수업을 들으며 직접 대화하는 심정으로 선생의 원뜻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 책은 두 저자의 공동 작업이라기보다는 각각의 독립적 연구물인 이기백의 역주와 김용선의 역주를 합한 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책의 전체적인 체제와 내용적인 통일성은 고려하였지만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40여 년의 세월 동안 국내에 축적된 고려사 연구의 현재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는 본격적인 역주에 앞서 ‘고려사’병지의 이해를 돕기 위한 두 저자의 짧은 논문을 실어 ‘해설’로 묶었다. 병지를 전반적으로 해설한 ‘고려사 병지의 검토’라는 글과 병지의 특성과 그동안의 역주 성과를 검토한 ‘고려사 병지의 특성과 역주의 방향’이라는 글은 ‘고려사 병지 역주’를 읽기 전, 독자들의 충실한 길잡이 노릇을 할 것이다.
▲ 이기백(1924∼2004)=평안북도 정주 오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서강대학교·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한림과학원 객원교수ㆍ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역사학회·진단학회 대표간사를 지냈다. 1987년 창간된 반연간지 ‘한국사 시민강좌’의 책임 편집위원을 맡았다. ‘국사신론’(태성사, 1961), ‘한국사신론’(일조각, 1967), ‘민족과 역사’(일조각, 1971)를 비롯한 많은 저서와 역서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저서와 논문들을 모아 1971년부터 ‘이기백한국사학논집’으로 펴내 2011년 전16권(별권 포함)으로 완간하였다.
▲ 김용선=서강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했다. 경남대학교·전북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현재 한림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고려음서제도연구’(일조각, 1991), ‘고려묘지명집성’(편저, 한림대학교 출판부, 1993; 제4판, 2006), ‘고려금석문연구’(일조각, 2004), ‘궁예의 나라 태봉, 그 역사와 문화’(편저, 일조각, 2009), ‘일본에 있는 한국 금석문자료’(편저,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0) 등이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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