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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도서반환’ 평생 바친 박병선 박사의 극적인 일대기

입력 : 2011-07-02 09:01:50 수정 : 2011-07-02 09: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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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국립도서관서 일하면서 온갖노력 끝 의궤 297권 찾아
마침내 국내귀환 ‘일등공신’
조은재 지음/김윤정 그림/북오션/1만2000원
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조은재 지음/김윤정 그림/북오션/1만2000원

오리나 백조가 우아한 자태로 호수 위를 떠다닐 수 있는 것은 물밑에서 발이 쉼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발레 등 무대 예술도 무대장치와 의상을 만들고 조명을 설치하는 등 누군가 무대 뒤에서 궂은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처럼 세상 일은 뒤에서 묵묵히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6월 11일 전국을 들끓게 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 2차분 한국 도착’이라는 역사적 사건 뒤에는 수십 년 동안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공들인 사람이 있다. 바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박병선 박사다.

‘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은 그저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 정도로만 알려졌던 박병선 박사의 극적인 일대기를 다룬 전기다. 책엔 일제강점기인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나 책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거쳐 우리나라 여성 프랑스 유학생 1호가 되어 파리로 건너간 후, 끊임없는 노력으로 프랑스국립도서 수장고에 방치된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내 반환되도록 평생을 바친 박병선 박사의 생애와 공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교육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한 박병선은 뇌수막염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졸업과 함께 프랑스로 유학 떠날 결심을 한다. 유학길에 오르기 전 박병선은 역사 과목을 가르치던 이병도 교수를 찾아갔다. 이 교수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가 있는데, 그것이 어떤 문화재인지, 또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게” 하고 부탁했다.

우리 역사와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박병선은 이 교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들었다. 소르본대학에 재학 중에는 책이 많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를 눈여겨본 도서관 동양학 책임자가 사서로 일해볼 것을 제안한다. 임시직이긴 했지만 대단한 영광이었다. 프랑스 국민은 그곳 도서관장을 ‘문화대통령’으로 여길 만큼 존경했고, 사서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박병선은 그곳에서 일하면서 동료 사서가 문의한 ‘아주 오래된 동양책’을 살펴보다 그것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임을 발견한다. 당시까지 세계 최초의 활자 인쇄본으로 알려진 구텐베르크의 성경책보다 78년이나 앞선 금속활자 인쇄본이었다. ‘직지’ 안에 적혀 있던 주조(鑄造)라는 글자를 연구한 결과였다. ‘직지’가 활자 인쇄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박병선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심지어 점토로 글자를 만들어 오븐에 굽다가 화재가 나기까지 했다.

도서관을 대표해 ‘세계도서의 해’ 전시회에 ‘직지’를 출품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박병선은 사학박사에 이어 민속사 부문에서 두 번째 박사 학위를 받는다.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교수직·연구원 제의가 쏟아졌지만, 이병도 교수의 부탁을 기억하고 있던 박병선은 모두 물리치고 도서관 생활을 이어갔다.

외규장각을 찾기 위해 업무 외 시간을 이용해 도서관을 샅샅이 뒤졌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의 베르사유 별관 내 수장고에 독특한 동양 고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던 중 녹색 표지에 문고리 장식이 달려 있는 화려한 책을 발견했다.

박병선이 그토록 찾던 외규장각 도서, 즉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강화도를 침범해 약탈해 간 조선왕실의궤였다.

박병선은 끝없는 노력으로 의궤 297권을 찾아냈지만 도서관에서 해직당한다. 의궤의 존재를 외부에 알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만 10년간의 연구 끝에 그 내용을 모두 해석해낸 그는 프랑스 측의 극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이 시작될 수 있도록 인생을 건다. 그리고 의궤를 처음 발견한 지 33년이 지난 후 마침내 외규장각 도서는 한국으로 귀환한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이 일에 매진한 그의 나이는 이제 83세가 됐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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