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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금 150만원 없어 구속되기도… 한순간의 욕망이 파멸의 지름길”

입력 : 2011-06-27 09:54:40 수정 : 2011-06-27 09: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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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전담 양은경 변호사의 하루
형편 어려운 피고인 변호… 개인적 사건 수임은 금지… 옛날과 달리 경쟁률 높아
“변호사님,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지난 24일 오전 허리가 굽은 50대 여성과 아들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서울 서초동 국선전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양은경(36·사법연수원 39기·사진) 변호사가 사건 내용을 묻자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가 대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강간’이라고 했다.

군 제대 후 고시원에 살며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은 친구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였다. 양 변호사는 “피해자와 합의하면 공소기각으로 사건이 종결되고 전과도 남지 않으므로 합의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합의금이다. 어머니는 “일곱 식구가 월세 20만원짜리 집에 살아요. 변호사님이 잘 좀 해주세요”라고 읍소했다. 의뢰인이 돌아간 뒤 양 변호사는 “성범죄 피고인이 합의금 15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구속된 사례도 있다”며 “돈이 없어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했는데, 합의 과정에서 또 돈이 운명을 좌우하는 셈”이라며 씁쓸해했다.

양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는 형편이 어려운 피고인을 변호한다. 의뢰인 대부분은 성범죄, 살인, 강도 등 혐의가 무거운 이들이다. 국선전담 변호사는 개인적인 사건 수임이 금지되는 대신 국고에서 매달 600만∼80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이날 오후 양 변호사는 구속 피고인을 접견하러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가출 청소년을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의뢰인이 있는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요. 피해 청소년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내 의뢰인을 위해 다시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야 합니다.”

이날 만난 의뢰인 중에는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뿐인 ‘강도살인미수’ 피고인도 있다. 배가 고파 가게에서 돈을 훔치려 했는데 점원이 저항하자 둔기로 머리를 때렸다고 한다. 그는 “의뢰인이 초범인 데다 ‘사람을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하니 피해자 상해 부위, 범행 당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변호사는 대학 졸업 후 4년간 기자생활을 하다 2006년 ‘늦깎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지난해 연수원 수료와 함께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국선전담 변호사가 된 뒤 별별 의뢰인을 다 만났다.

“어차피 나랏돈으로 변호를 받으니 해볼 것은 다 하겠다”며 사건과 무관한 사람 1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해 달라고 떼를 쓴 이가 있는가 하면, 지팡이를 휘두르며 “무죄 선고를 못 받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한 이도 있다. 기자 시절 스타 연예인의 화려한 모습을 주로 취재했던 양 변호사는 요즘 반대로 우리 사회 어두운 구석을 접하며 ‘이것이 진짜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해묵은 감정을 풀지 못해 수년째 고소·고발을 주고받으며 법정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아집과 독선이야말로 자신을 가두는 가장 무서운 감옥임을 깨달아요. 전과 한 번 없이 살다가 어느 날 성범죄로 철창 신세가 된 피고인들은 한순간의 욕망이 파멸의 지름길이란 걸 새삼 깨닫곤 하죠.”

글=김태훈, 사진=이종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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