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개발 사정은 더욱 열악했다. 미 군사고문단이 한국형 무기 개발을 철저히 통제했던 것도 장애로 작용했다. 결국 미군이 사용 중이거나 생산 중단된 총을 가져다가 베끼거나 개량하는 단계에서 개발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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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총을 개량해 한국군이 사용한 주요 총기들. 위로부터 M1 카빈, M2 카빈, M1919A4 기관총, M60 기관총, M79 유탄발사기, M203 유탄발사기. |
참전 중인 미군에게는 신형 연발 소총인 M14가 보급됐지만 한국군에게는 미국인 체격에 맞게 제작된 재래식 단발소총 M1이 지급됐다. 그러다 보니 전투에서 63년식 연발 AK 소총에 당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한국군 입장에서는 AK에 대응할 만한 장비의 확보가 시급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당시 미국에서 생산을 중단한 ‘M1 카빈’ 소총의 개량이었다. 1년 만에 단발형 M1, 36연발형 M2를 제작했고 성능시험에서 성공했다. 이후 이 소총은 파병 한국군에게 대량 지급됐다.
미국산 카빈을 개조한 것이지만 무기 분야에서는 최초의 개발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카빈은 기병용 소총을 지칭한다. 보병용 총은 성능을 중시하므로 총의 길이가 길고 화력이 막강한 반면, 기병용 소총은 상대적으로 짧고 화력이 약해 말 위에서 쏘기에 적합하다. ‘M1 개런드’가 보병용이라면 M1 카빈은 기병용인 셈이다.
이런 카빈은 표준형인 M1, M1A1과 자동사격 기능을 갖춘 M2, 저격용 M3 등 4종류가 있다.
1971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지시로 이뤄진 병기개발 프로젝트인 ‘번개사업’도 소총의 모방 및 개량에 탄력을 더했다. 개발 품목은 소총과 기관총, 60㎜ 박격포, 수류탄, 지뢰, 소형 쾌속정, 경항공기 등이었다. 당장 필요한 것을 우선 개발하고, 즉시 만들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ADD) 수준과 가내수공업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국내 공업 상황을 감안하면 이 지시는 무모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71년 11∼12월 1차 번개사업 때는 M2 카빈 개량과 M1 자동화, M1919A4형, M1919A6형 보병용 경기관총 재질이 개선됐다. 이듬해 1∼2월 2차 번개사업 때는 1차 사업 시제품 가운데 불량부품을 중점 보완하는 작업이 뒤따랐다.
미국산 총기의 주요 부품 및 수리부품, 기본 휴대품을 모방해 시제품을 만드는 작업은 양산에 필요한 제반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목적을 뒀다. 우여곡절 끝에 그해 4∼6월 3차 번개사업 때는 모든 시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이 시기에 개량된 총들로는 M1, M2 카빈소총을 비롯해 M1919 기관총, 7.62㎜ M60 기관총, M79 유탄발사기, M203 유탄발사기, 탱크 장착용 50㎜ 기관총 등을 꼽을 수 있다.
박병진 기자, 공동기획 국방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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