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머리판 등 나무로 만들어 명중률 낮고 쉽게 과열 단점
이 소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설계해 1947년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제품명 AK-47은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자동소총으로 1947년이 생산 원년’이라는 뜻의 영어(Automatic Kalashnikov 1947)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칼라시니코프는 2차 대전 때 소련군으로 징집됐다가 부상해 입원하는 동안 새 소총을 고안했다. 전쟁이 끝난 뒤 소련군이 개최한 신무기 경연대회에 입상했고, 곧 대량생산돼 소련군에 보급됨으로써 AK-47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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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K-47 시제품을 들고서 있는 러시아의 소총 개발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
반면, 정밀도가 떨어져 명중률이 낮은 편이고 연발 사격시 쉽게 과열되며 무겁다는 점 등이 단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소련군은 신형 5.45㎜x39㎜ 탄약의 개발과 동시에 칼라시니코프에게 새로운 소총의 제작을 맡겼고, 그래서 나온 것이 AK-74 버전이다. 아직도 상당수 구 공산권 국가들은 AK-74를 주력 소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AK-47과 그 변형 모델들은 전 세계 소총 시장을 주름잡았다. 지난 60여 년간 무려 1억정 이상이 생산, 보급됐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이는 전 세계에서 생산된 다른 모델의 소총을 합한 것보다 많은 양이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각각 동맹국이나 자국의 이념을 따르는 반군에게 자국산 무기를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AK-47은 미국의 이념을 따르지 않는 국가나 반군집단의 소총으로 자리를 굳혔다. 한때 많은 제3세계 신생국에서 반제국주의의 아이콘 역할을 했다. 아프리카의 모잠비크는 1970년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뒤 제정한 국기에 이 소총의 도안을 담았다. 이 밖에 짐바브웨, 동티모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헤즈볼라 등의 문장이나 깃발에 이 소총의 도안이 담겼고 체 게바라 티셔츠에도 인쇄돼 있다. 북한에서는 AK-47을 ‘아카보총’(步銃)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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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마 빈 라덴 뒤편에 세워져 있는 AK-47 소총. |
얼마 전 한국 해군의 ‘아덴만 여명작전’ 때 소말리아 해적에게서 노획한 장비에도 AK-47이 등장했다. 이 소총과 RPG-7 휴대용 로켓이 해적의 주무기였던 것이다. 2006년 유엔이 주최한 무기 밀거래 방지에 관한 회의에 참석한 칼라시니코프는 “나는 조국의 방위를 위해 새 소총을 만들었는데 모조품이 넘쳐나고 범죄조직이나 테러리스트에게 보급돼 있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고 개탄했다. 세계 최고의 소총이란 명성 뒤에 얼룩진 상처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박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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