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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농사짓는 유기농 녹차밭. |
제주시 회천동 번영로변에 있는 초록빛제주영농조합법인은 2만4천여㎡의 밭에서 산양과 염소, 토끼, 돼지, 닭, 오리 등을 이용해 유기농 녹차를 재배하고 있다. 동물을 활용해 녹차를 키우는 곳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장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산양 4마리는 녹차 밭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며 잡초를 뜯어 먹는다. 산양은 신기하게도 녹차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귀풀과 클로버, 칡, 쑥 등만을 골라 먹었다. 초식동물은 새 풀을 좋아하는데다 녹차 특유의 씁쓸한 맛 때문에 먹이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닭과 오리는 나방 등 각종 병해충을 잡아먹고, 돼지는 땅을 갈아엎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잡초가 없다면 진딧물 등 해충이 녹차의 새순에 집중적으로 달라붙기 때문에 농약을 사용해야 하지만 초생재배법을 이용하면 토양의 보온·보습 관리는 물론 병해충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다만, 풀이 자라나는 속도가 워낙 빨라 녹차의 광합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잘라줘야 하는데 이 역할을 초식동물들이 맡은 셈이다.
이들의 배설물은 미생물에 의해 천연비료가 된다. 생태계의 기본구성 요소인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의 순환관계를 이용해 농약이나 비료 없이도 얼마든지 녹차를 키울 수 있다는 게 농장 측의 설명이다.
2006년부터 녹차 재배를 시작한 이 농장은 녹차에 해(害)를 주지 않으면서 잡초를 처리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산양을 들여와 큰 효과를 봤다. 회천동 이외에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12만㎡ 등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녹차농사를 짓고 있다. 앞으로 산양 숫자를 100마리까지 늘려 유기농 녹차와 염소 젖을 혼합한 건강기능성 녹차치즈를 생산할 계획이다.
연회비를 내고 차밭 1계좌를 분양받으면 1년간 차를 수확하는 채다(採茶), 차를 덖는 제다(製茶), 녹차를 시음하는 행다(行茶) 등 차 만들기의 전반적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우전, 세작, 중작 등 유기농 녹차는 물론 감귤에서 추출한 비타민과 혼합한 비타민 녹차·홍차도 입맛 칼칼한 차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24일 첫 녹차를 따는 행사에는 회원 1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고, 오는 5일 어린이날에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늦둥이 막내딸과 함께 녹차 밭을 찾은 김영호(43.제주시)씨는 "한 달에 적어도 두 번은 농장에 오는데 가족이 함께 녹차를 따며 정이 돈독해지고 아이들은 동물들과 뛰놀 수 있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며 "봄나들이 장소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맹찬(43) 대표는 "초기에는 넓은 녹차 밭에 인력을 투입해 일일이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지만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어울려 사는 숲에서 힌트를 얻은 재배방법으로 생산비까지 낮출 수 있었다"며 "감귤밭 등 다른 농가들에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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