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반환형식 놓고 줄다리기… 사르코지 나서 ‘일반대여’ 합의

협상은 1991년 규장각을 관리하는 서울대학교가 총장 이름으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정부에 공식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1993년 9월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고속철 테제베(TGV) 협상을 위해 방한해 ‘휘경원원소도감의궤’ 1권을 돌려주고 정상회담에서 ‘상호 교류와 대여’의 원칙에 합의하면서 쉽게 해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반환 협상은 곧바로 난항에 부딪혔다. 한국 정부는 국내 여론 등을 감안해 ‘영구대여’ 방식으로 돌려받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프랑스 측이 파리국립도서관의 한 사서가 눈물까지 흘리며 벌인 생떼 등을 핑계로 미온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약탈한 문화재를 많이 보유한 프랑스에선 반환 선례를 남길 경우 다른 나라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내부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양국 정부는 2001년 외규장각 도서를 임대 형식으로 돌려받는 대신 국내 다른 문화재를 주는 ‘등가등량 맞교환 방식’에 잠정 합의했으나, 국내 학계·문화계·언론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후 한동안 반환 협상은 고착 상태를 보이다가 2007년 시민단체인 ‘문화연대’가 약탈문화재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는 프랑스 국내법을 문제 삼아 프랑스 행정법원에 반환 소송을 제기하면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는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다.
마침 같은 해 니콜라 사르코지가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한 뒤 프랑스 측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한국과 외교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도 프랑스 측의 반발을 사던 ‘영구대여’라는 용어를 포기하고 ‘일반대여’ 방식을 추진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프랑스가 국내법상 문화재 반출에 ‘영구대여’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점을 우리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실용적 관점에서 대여 형식에 크게 집착하지 않고, 사르코지 대통령 재임기간이 도서를 돌려받을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G20(주요 20개국) 서울 정상회의 때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 대여갱신 방식으로 한국에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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