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혜란 지음/보림출판사/1만원 |
시장 골목 낮은 집, 작은 방에 새로 이사 온 준범이가 할머니와 산다. 창 너머로 보이는 앞집은 한 지붕 아래 미장원, 슈퍼, 중국집이 오글오글 모여 있다. 준범이네 바로 앞집 미장원에는 공주, 그 옆집 슈퍼에는 충원이, 또 그 옆집 중국집에는 강희와 강우 오누이가 산다. 가게에 살림집까지 붙어 있어 앞집은 그래서 늘 시끌벅적하다.
밥 먹어라, 배달 다녀온다, 동생 좀 봐라…. 야단치고, 달래고, 웃고, 떠들고…. 공주, 충원이, 강희·강우는 늘 마당에서 함께 뛰어 논다. 같이 학교에 다녀오고, 그림도 같이 그리고, 공주 놀이도 같이 하고, 총싸움도 같이 한다. 물론 가끔 다투기도 한다. 어느새 준범이는 아이들 이름은 물론 강희네 강아지 땡이 이름까지도 다 외웠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마당에서 놀던 강희 눈에 낯선 얼굴과 마주친다. 뒷집 창틈으로 배죽 얼굴을 내민 준범이를 발견한 것. 강희는 같이 놀자고 손짓하며 말을 붙인다. 하지만 준범이는 “할머니가 나가지 말고 집에서 놀랬어”하며 이내 모습을 감춘다.
창밖이 또 시끌벅적하다. 아이들이 강희네 아빠가 만들어준 자장면을 먹을 모양이다. 자장면 냄새는 정말 좋다. 준범이는 조심스럽게 창밖을 내다봤으나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그때 “준범아 노올자” 하고 아이들이 준범이네로 들이닥친다.
“너, 준범이 맞지?” “언제 이사 왔어?” “엄마, 여기.”

‘뒷집 준범이’는 어린 시절 가족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우리 가족입니다’로 보림창작그림책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혜란 작가의 후속작이다. 사람 사는 동네의 소소한 일상을 꼼꼼한 연필 그림으로 담아냈다. 멋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그린 그림, 아이가 쓴 듯 삐뚤빼뚤한 손 글씨가 압권이다. 회색 톤 위로 따뜻하게 번져나가는 색 점들도 이야기와 잘 어우러진다.
환한 마당과 어두운 방이라는 두 개의 세계를 대비시켜 주인공 준범이의 시선으로 그려진 앞집 풍경은 창이 열리듯 점점 넓어지며 화면에 변화를 주며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모처럼 접하는 빼어난 그림책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