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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광장] 거대담론이 실종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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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3-24 22:06:48 수정 : 2011-03-24 22: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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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의식 잃고 종잡을 수 없는 사회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 공감과 자비
요즘 만나는 이들로부터 많이 듣는 얘기가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한탄이다. 목표의식을 상실한 인간 같다고 했다. 거대담론의 상실감이다. 거대담론을 운위할 시대는 지났는데 웬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거대담론은 공리공론, 이데올로기라는 낙인하에 촌스러운 신세가 된 지도 오래다. 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허위의식’으로 매도되기까지 한다.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대담론은 인류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들의 실험의 궤적(역사)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도 그런 것이다.

편완식 문화선임기자
과연 우리는 거대담론이 필요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거대담론에 끼어들기 쉬운 은밀한 음모와 의도를 걸러낸다면 여전히 가치는 유용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최근 한 방송사 연예 프로그램의 논란은 ‘공정사회’라는 거대담론의 열망을 말해주고 있다. MBC 연예 프로 ‘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서 제작진과 출연 가수들이 ‘경쟁에서 탈락하면 다른 가수들로 교체되고 더 이상 출연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뭉개버리자 시청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탈락을 피하려 긴장하며 열창하는 모습에 환호했던 시청자들에게 허탈과 배신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공정한 게임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던 것이다. ‘힘있는 출연자’의 의사에 따라 룰이 무너지는 모습에 공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공정한 룰에 목말라 했다는 얘기다.

지난 시절 우리는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담론이 있었다. 1960대에는 ‘잘살아보자’는 것이었다. 배고픈 보릿고개에서 벗어나보자는 열망만큼 파괴력 있는 사회 통합력의 요인은 없었을 것이다. 1970∼80년대에는 민주주의가 거대담론이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 화두였던 시절이다. 1990년대 이후엔 사회 구성원 모두를 관통하는 이렇다 할 거대담론이 없다. 거대담론이 해체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거스르지 못하는 모습이다. 가벼운 일상, 개인적인 이야기가 주류다.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하지만 개인이 모여 이루는 국가와 사회는 상호 유기적 관계라는 점에서 공동체를 묶어줄 거대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에겐 통일과 사회통합이라는 과제가 아직도 남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사회 전체를 묶어 줄 수 있는 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

거대담론이 ‘이것’이라고 국가가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는 없다. 하드웨어만 명확히 해주면 소프트웨어는 국민이 만들어 채워줄 것이다. 하드웨어는 바로 우리 사회의 공정한 프레임 구축이다. 공정한 룰이 존재하면 우리 사회를 관통할 거대담론은 저절로 생성되게 마련이다. 그 속에 우리 사회가 몰두할 수 있을 때 우리네 삶은 풍요로워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거대담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케케묵은 이야기 같지만 공감과 자비가 흐르는 거대담론이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1949년 그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축의 시대(Axial Age)’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정신의 기원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축이 되는 시대라는 의미다.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이를 그의 저서 ‘축의 시대-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에서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축의 시대’는 대략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700년 동안이다.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한 인류사의 가장 경이로운 시기다. 공자, 고타마 싯다르타, 선지자 엘리야,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이 시기에 세상에 나왔다. 암스트롱은 사람들은 ‘축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슬퍼하는 공감과 자비의 정신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인류 성찰의 근본 틀이 된 ‘축의 시대’의 깨달음에서 폭력과 증오, 불관용으로 점철된 이 시대의 위기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인류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미 2000년 전에 다 나왔다는 얘기다.

요즘도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남북한 갈등, 사회의 빈부격차, 지역·계층 갈등도 공감의 거대담론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국가적 쓰나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시대를 견인할 새로운 거대담론을 기대해 본다. 공감의 거대담론 말이다.

편완식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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