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전국투어서 화음 맞춰

이익균(64·사진) 한국종합기술 전무는 요즘 마냥 행복하다. 정식 가수로 데뷔한 적 없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회사에서 근무하고 나서 주말이면 지방으로 가 윤형주·송창식·김세환의 ‘세시봉 친구들’ 전국 투어에서 게스트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MBC ‘놀러와’의 설특집 ‘세시봉 콘서트’ 때 객석에 자리했던 이씨가 깜짝 출연해 매력적인 저음으로 윤형주·송창식 등과 멋진 화음을 만들어낸 게 계기가 됐다.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윤형주·송창식과 ‘트리오 세시봉’ 멤버로 활동하다 대학 전공(연세대 토목공학과)을 살려 진로가 정해진 후 40여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선 것이다.
“1967년 멕시코 출신 미국 그룹인 트리오 로스판초스가 내한했는데 세시봉 사장님이 한국에도 이런 트리오 팀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우리에게 권유했어요. 사장님이 먹여주고 입혀주면서 그 팀을 본떠 ‘트리오 세시봉’이란 이름으로 노래하기 시작했죠.”
‘뽕짝’이 유행하던 시절 대학생들이 부르는 서양 팝송은 센세이셔널했다. 그러나 ‘트리오 세시봉’ 활동은 채 1년도 되지 못했다.
그는 “노래를 하며 휴학을 했더니 바로 영장이 나왔다”며 1968년 2월 6일 입대해 특수부대에 배치돼 베트남전까지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는 1975년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입사해 토목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때 친구들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엔지니어로서 1970년대 국토개발 건설 붐의 주역으로 산 인생도 보람됐다고 한다.
“노래를 해서 유명해졌다면 그것도 의미 있겠지만 전국을 다니며 아파트를 짓는 일도 기술자로서 부족하지 않은 삶이었어요. 주위에서 곡을 줄 테니 솔로로 활동하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제가 노래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솔로로 좋은 평을 받을지도 의문이었죠.”
이씨는 “그저 ‘형주야, 창식아’ 부르면서 20대 세시봉 시절로 세월을 거스를 수 있으니 친구들에게 고맙다”며 “창식이가 리드를 잘해주고 형주가 잘 맞춰주니 세월이 흘러도 화음이 잘 맞는 거지, 다른 사람과는 안 된다”며 크게 웃는다.
추영준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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