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행이 한 연… 장황하고 난삽한 詩 유행에 뼈아픈 지적
명징한 비유로 그리움과 안타까움 느꺼움 독자들에 감동
“잎 뒤 숨어 있는 사연들// 일러바칠 곳 없는 동네// 우물가 집 뒤란의 누나 방에//굴러다니는 피임약이여, 그걸// 영양제로 주워 먹고 건강한 오늘이여”(‘앵두가 뒹굴면’)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김영남(54)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가을 파로호’(문학과지성사)는 대뜸 이런 시로 시작한다. 관능과 추억이 포개져 서럽다. 하지만 메타포의 칼날을 벼려 작심하고 한칼 휘두른 이번 시집에서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오해로 돌아선 이// 그예 그리움으로// 담을 타는 여인// 아래 벗겨진 신발// 모두 매미 소리에 잠들어 있구려// 내 아직 늦지 않았니?”(‘능소화’)
한 행이 한 연이다. 연과 연 사이로 바람이 숭숭 지나간다. 그 바람 속으로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느꺼움이 한가득하다. 능소화는 담을 타고 나팔꽃처럼 기어오르는 주황색의 관능적인 꽃이거니와, 시인에게 이 꽃의 메타포는 그리움으로 정인의 집 담을 넘는 여인이다. 담을 타다 신발까지 벗겨졌지만 요란한 매미소리는 오히려 깊은 산중의 정적을 일깨운다.
그만큼 담을 넘는 여인의 심중이 연인에게만 집중돼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치인데, 일본이 내세우는 바쇼의 하이쿠 “적막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와도 겨룰 만한 장관이다.
“저 털실 뭉텅이/ 다 풀릴 때까지/ 보리밭만 시끄럽겠다// 털실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니/ 언덕 위가 어지럽고/ 나도 눈이 감긴다”(‘종달새’ 부분)
김영남 시인이 구사하는 명징한 메타포는 도처에서 반짝인다. 높은 허공에서 보리밭으로 수직 낙하하다가 다시 솟구쳐 오르곤 하는 종달새를 보며 시인은 털실 뭉텅이를 떠올린 모양이다. 종달새에서 얻어낸 ‘털실 뭉텅이’라는 메타포는 과연 득의의 한칼이다.
“대밭에 이는 풍랑이니 어디 수평선이 있겠어요// 수평선 없으니 기다리던 배 소식도 어떻게 기대하겠어요// 북풍에 시달리던 상처// 눈 위에 툭툭 떨구는 수밖에”(‘동백꽃’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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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京都)의 대나무숲 앞에 선 김영남 시인. 이번 시집에 수록된 ‘동백꽃’에서 그에게 댓잎이 수런거리는 소리는 대나무 바다의 풍랑이 빚어내는 파도소리로 다가선다. |
“할머니, 하고 불렀다. 오냐,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 하도 그윽하여 오냐 오냐 오냐 오냐 하며 한 만년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듯 안 사라지는 듯 꺼져가는 의식에 뿌리가 생기고 잎이 돋아// 어느 섬에 피어 그 섬 오가는 뱃머리와 하늘에 머물렀다가 갯바위 위에서 어릴 적 나를 어루만지다가 노을 곁으로 지팡이 짚으며 사라지듯 안 사라지듯 오냐 오냐 오냐 하며 가는”(‘문주란’)
제주도 언덕배기에서 바닷가를 굽어보며 피어나는 수선화과의 문주란. 그 부드러운 선과 소박한 자태에서 시인은 ‘한 만년 시간 속으로’ 사라진 것 같은 할머니의 정서를 떠올린 것인데, 문주란의 이미지와 어울려 그윽하고 따뜻하다.
“향기로운 시간 속으로/ 누가 올 것만 같다/ 벌써 오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와/ 담벼락을 돌아갔다// 그러자 그 자리/ 환한 전등이 내어 걸린다/ 깔깔깔 웃음소리 굴러 나오고// 웃음에 얻어맞은 난/ 파란 멍이 만져진다”로 이어지는 ‘남해 유자 주무르면’도 향기나는 메타포의 과실이다.
“좋은 메타포란 얼마나 높은 곳의 새알이며/ 잘못 놓으면 얼마나 위험한 낭떠러지냐”(‘벼랑 위 소나무 내게 끌여들여’)고 탄식하는 시인은 “그간 나의 시는 시 이전의 비유였고 비유 이전의 기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렇다, 이번 글도 메타포에 대한 대책 없는 절망이고 패배이리라”고 ‘시인의 말’에 썼다.
조용호 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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