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수 감소 직결” 우려속
“정책판단 문제” 입장변화 시사

국제유가 급등 행진이 이어지자 유류세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생필품 및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고통받는 서민의 기름값 부담까지 가중되는 상황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유가 잡기에 골몰하면서도 유류세 인하는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정부 내에서 태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기름값 절반이 세금
25일 기획재정부와 대한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2월 셋째주 기준 보통휘발유의 주유소 판매가격은 ℓ당 평균 1850.2원인데, 여기서 세전 정유사 가격 840.4원(45%)과 유통비용 및 마진 95.7원(5%)를 제외한 나머지 914.1원(49%)이 세금이다. 자동차용 경유도 주유소 판매가격 1651.4원 중 41%인 668.3원이 세금이다.
소비자들은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때마다 ℓ당 600∼900원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ℓ당 이윤이 10∼20원인 정유사나 4∼5원인 주유소를 압박하는 것보다 유류세를 내리는 게 기름값 인하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정부는 해마다 20조원 정도를 유류세로 거둬들이고 있다.
최근 경실련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 이상(86.1%)이 “유류세 인하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화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업계 노력만으로는 기름값 인하에 한계가 있다”며 “긴급 상황이니 정부가 재정적 어려움보다는 서민의 어려움을 우선해 유류세 인하를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고민하는 정부
유류세가 ℓ당 일정금액이 고정된 종량세인 만큼 세수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에 정부는 쉽게 인하결정을내리지 못한다. 세금을 깎아도 소비자가격 인하폭이 크지 않을 수 있고,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정책효과가 소멸될 수 있는 것도 부담이다.
재정 건전성을 위해 세금 인하에 신중해야 할 정부로서는 티도 못 내고 세수만 축내는 최악의 결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유가가 올랐다고 세금을 내리는 선례를 또 남기면 비슷한 상황이 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유류세 인하 여론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정부는 2008년 3∼12월 유류세를 10% 내린 선례가 있어 유가 상승세가 멈추지 않으면 유류세 인하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당국자들의 발언에서도 정해진 게 없다고는 하지만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 여부는 정책 판단의 문제”라며 “조금 이르지만 여러 가지 검토를 하고 있고 유류세 인하는 배럴당 130∼140달러를 넘어서야 물가나 재정여건 등을 종합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이 이날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정부는 상황별로 활용 가능한 정책수단을 준비하겠다. 서민생활에 어려움이 가중되지 않도록 필요할 경우 신속대응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상혁 기자 nex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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