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심점 없이 사분오열된 부족들
카다피가 집권하기 전 리비아는 140개 부족으로 이뤄진 3개 자치주의 통합 왕정 국가였다. 40여년 전 왕도이자 현재 제2의 도시인 벵가지 등 동부지역은 와르팔라 부족과 자위야 부족 등이, 트리폴리 등 서부는 카다파 부족과 마가리하 부족 등이 주로 통치했다. 이러한 까닭에 650만 리비아인은 곧잘 정치이념보다는 출신 부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곤 했다. 반정부 시위대가 시위 발발(16일)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동부 주요 지역을 장악한 것이나 트리폴리 반정부 시위대가 힘없이 진압된 점은 이 같은 역사적·사회적 배경에 기인한다.
카다피는 이 같은 리비아의 특성을 42년 통치에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서부 트리폴리로 수도를 옮기면서 동부 부족들이 느낀 상대적 박탈감은 ‘외세에 맞서기 위한 부족 간 통합’을 외치며 무마했다. 카다피는 대중 직접 민주주의와 이슬람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의회, 정당 등 대의제를 없애기도 했다. 그 결과 리비아 야권은 현재 뚜렷한 지도자 없이 사분오열된 상태라고 CSM은 전했다.
◆원유 업고 되레 국제사회에 큰소리
사분오열돼 있는 국내 상황이 카다피 자신감의 가장 큰 근거인 셈이다. 카다피는 와르팔라, 자위야족을 제외한 리비아 인구 3분의 2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평균 연령 24.2세에 불과한 리비아인 대부분은 자신이 표방한 이슬람사회주의 수혜자들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행여 젊은 세대를 자극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진작에 차단했다. 군에는 1969년 무혈쿠데타 이후 대위 이상을 모두 숙청해버려 반기를 들 세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군 일부가 이탈해 시위대에 가담한 것은 뿌리 깊은 부족주의 때문이지, 정권에 대한 이반은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매장량 440억 배럴 이상으로 추산되는 풍부한 원유도 카다피가 버틸 수 있는 든든한 자원이다. 카다피는 엄청난 원유, 천연가스와 지정학적 위치를 등에 업고 지난 42년간 쉴 새 없이 미국 등 서방세계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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