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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김영하는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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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2-18 21:25:25 수정 : 2011-02-18 21: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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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접고 책상으로 복귀 선언
같이쓰기 거북해 소통 포기해서야
며칠 전 소설가 김영하씨가 “블로그를 닫고 트위터를 그만두겠습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독자들과의 오랜 직접 소통을 끝냈다. 그는 올해 초부터 평론가 조영일과 ‘작가라는 직업과 그 삶의 조건’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놓고 각자의 블로그를 통해 논쟁을 주고받았다. 이 논쟁이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면서 진지하고 격렬했지만 때때로 갈피를 잃은 수많은 댓글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타진요 신드롬’처럼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온라인 활동을 접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책상’ 앞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한 달여를 이어지던 논쟁 역시 어이없는 종결을 맞았음은 물론이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
김영하는 블로그를 열고 트위터를 하면서 ‘고립된 작업실에서 나와 사람들과 대화하는’ 아주 드문 작가이다. 짤막하지만 품위있는 블로깅, 진지하면서도 재치있는 트위팅, 자체 제작한 팝캐스트를 통해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수많은 네티즌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김영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소설에 블로그나 트위터 등에서 벌어졌음직한 다양한 사건을 시의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문학적 신선함을 더했다. 날쌘돌이처럼 시대의 최첨단 장치들을 이용해 세상과 접속하고, 그것이 다시 문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보인 김영하는 우리에게 미래형 작가의 초상 같아 보였다. 따라서 이번 그의 소통 실패는 21세기 한국문학의 어떤 실패로 기억될지 모른다. 아마도 작가에게 세계와 소통하는 단 하나의, 그리고 가장 넓은 ‘광장’은 언제나 자신의 작품일 것이다.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열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에서 활약하기도 하지만, 그의 가장 간절한 소통은 손바닥만 한 책상 위에서 쓰는 작품을 통해서만 온전히 이루어진다.

그러나 좁은 작업실에서 세속과 연을 끊은 채 열정과 우울을 길잡이 삼아 글을 써내려 가는 작가의 초상은 많은 작가들이 선호하지만 몇 세기 전에 서양의 낭만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골동품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들의 자발적 고립에 한없는 경의를 표하지만 네트워크 공간이라는 고립 상태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광장에서 타인과 같이 유쾌하게 어울리면서 글을 쓰는 작가의 새로운 초상도 꿈꿨다.

사실 글쓰기의 역사에서 ‘혼자 쓰기’는 최근 몇 세기 동안, 그것도 소수에 의해서만 수행된 대단히 예외적인 현상에 속한다. 글은 본래 같이 쓰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입을 열어 말하고 한 사람은 점토판을 들고 받아 적는 고대 수메르의 글쓰기가 상징하듯이 글쓰기는 보통 집합적으로 이루어졌다. 글쓰기의 개인화 과정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우리가 쓰고 읽는 글은 대부분 서로 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모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같이 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네트워크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세상,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로 이어진 세상은 ‘같이 쓰기’를 우리 시대의 흥미롭고도 중요한 주제로 환기한다. 이것은 시나 소설과 같이 한 사람이 글의 처음과 끝을 장악하고 차례차례 써나가는 선형적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규칙으로 전개된다. 작가와 같은 ‘혼자 쓰기’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같이 쓰기’라는 낯선 세계에서는 길을 잃을 수 있다. ‘타진요 신드롬’에서 보이듯이, 특히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고함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같이 쓰기’가 일상화한 세계에서 골방의 소통만을 고집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문학의 최대 문제점 중의 하나인 ‘자기고백의 범람’ 같은 또 다른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

김영하는 돌아와야 한다. ‘같이 쓰기’의 규칙이 엉망이거나 조금 익숙지 않다고 해서 소통 자체를 포기해선 안 된다. ‘혼자 쓰기’가 ‘같이 쓰기’를 끌어올리고 ‘같이 쓰기’가 ‘혼자 쓰기’를 보충하는 곳에서 미래의 문학이 나타날 것이다. 그 첨단의 자리로 김영하는 복귀해야 한다. 한국문학의 미래를 위해.

장은수 민음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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