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서운 행태와 달리 바이러스는 면역체계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조교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구제역’은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우제류에게 발생하는 급성전염병이다. 멧돼지나 사슴과 같은 야생동물은 집단 감염이 되지 않고, 조류독감의 숙주가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이라고 하는데 이들 역시 집단 감염이 없다. 왜일까.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에 잘 걸리는 가축과 가금류는 인간이 대량으로 사육한 반면 야생동물이나 야생조류들은 자연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크게 다르다. 이는 면역력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바로 경제적인 효율성 때문에 좁은 축사에 가축을 많이 넣고 기르는 탓에 면역력이 저하돼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지금과 같은 행태로 가축이나 가금류를 사육한다면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은 언제든지 또 재발할 수 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 빽빽한 사무실, 찜통 같은 지하철에서 무리지어 살아가고 돈만 내면 음식을 주는 식당, 대가만 지불하면 먹을거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마트가 있는 곳에서 거주하는 인간들은 사료로 키워지는 가축이나 가금류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 특별한 질환이 없는 것 같아도 1980년대 중반 러시아 과학자 앤 벅맨에 의해 최초로 도입된 개념인 건강과 질병 사이의 제3의 상태를 말하는 ‘아건강(Sub-Health)’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인구 중 아주 건강한 사람은 약 5%, 환자는 약 20%, ‘아건강’ 상태인 사람이 75%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미병(未病)’으로 부른다. 중국 전국시대 의학서 ‘황제내경’은 “명의는 미병을 치료한다. 병이 생긴 후에 약을 주는 것은 갈증이 날 때 우물을 파는 격이요, 싸움을 앞두고 무기를 만드는 격이니 이는 이미 늦은 것”이라고 했다. 미병치병(未病治病)! 이것은 ‘병들기 전에 미리 병을 치료한다’는 한의학의 원리로, 예방의학적 측면에어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항생제나 해열제만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치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미병치병’으로 가는 첩경이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삶을 통해 개체의 면역력을 강화시킨다면 바이러스가 그렇게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다.
한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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