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황온천에 몸담그면 스트레스 훨훨… 열도인들 자부심 커
필자: “노천 온천에 들어가서 아침 햇살을 받는 순간 정말 황홀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일본어 선생: “열도에 살면서 스트레스가 많은 일본인들은 바로 그런 순간 최고의 행복을 느낀답니다.”
2009년 가을, 도쿄 북쪽에 위치한 군마현의 구사쓰(草津)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셨기에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교통비와 여관비가 워낙 비싼 일본이다 보니 어디 나서려 마음만 먹어도 절로 위축되는 분위기에서 자동차까지 빌려가며 다녀온 일정은 1박2일 코스.
일본어 선생: “열도에 살면서 스트레스가 많은 일본인들은 바로 그런 순간 최고의 행복을 느낀답니다.”
2009년 가을, 도쿄 북쪽에 위치한 군마현의 구사쓰(草津)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셨기에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교통비와 여관비가 워낙 비싼 일본이다 보니 어디 나서려 마음만 먹어도 절로 위축되는 분위기에서 자동차까지 빌려가며 다녀온 일정은 1박2일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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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으뜸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구사쓰 온천 모습. 마을 한가운데서 솟아오르는 유황 온천 주변에는 수많은 호텔과 여관 및 휴양시설이 들어서 있다. 온천물이 하얗게 보이는 까닭은 엄청난 양의 유황 때문이다. |
예약한 숙소에 들러 여장을 풀고, 해당 숙소의 온천에 들어가 보니 삶은 계란 껍질에서 나는 듯한 비린내가 진동한다. 산성 성분에서 비롯된 유황 특유의 냄새라는 것이 주인의 설명. 유황과 수증기가 뒤범벅된 연기를 헤쳐가며 온천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발끝에서 찌르르한 기운이 감돈 까닭에서다. 유황 온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데, 워낙 유황 함유량이 많다 보니 피부가 잠시 경기(驚氣)를 일으켰던 것이다.
실제로 구사쓰 온천은 일본 최고의 유황 함유량을 자랑하고 있기에 10엔짜리 동전을 일주일만 담가두면 동전이 삭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벽에 난 구멍을 통해 탕으로 흘러들어오는 온천물은 낙하 지점에 위치한 돌 역시, 푸르스름하게 변색시키며 한 움큼 삭여 놓았다. 후에 자료를 찾아보니 하도 강한 산성 때문에 어떤 세균이나 유해 미생물도 수초 내에 죽고 마는 곳이 구사쓰의 유황물이란다.
‘명의(名醫)도, 구사쓰의 온천도 상사병만큼은 치료하지 못한다’는 속담을 낳은 구사쓰의 명성이 결코 허언만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이곳에서 몇 달간 온천욕을 계속하면 웬만한 아토피는 씻은 듯 낫는다는 후문이다.
다음날 아침, 다시 한번 온천욕을 하러 탕에 들어갔을 때 마침 떠오르는 햇빛 한 줄기가 필자의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곧이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감동과 행복이 몸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왔다. 나중에 도쿄로 돌아와 구사쓰 온천에 다녀온 이야기를 전하며 당시의 기분을 어눌하게 설명하자, 일본어 선생은 “그래서 일본인들은 그런 순간 일본인으로 태어난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느낀다”는 말로 화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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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온천여행을 소개하는 어느 웹사이트. 정보를 게재하고 있는 온천만 5000여개라는 안내가 인상적이다. |
태풍과 화재, 지진과 쓰나미로 끊임없이 시달리는 일본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계절 축제로 봄엔 벚꽃을 즐기는 ‘하나미(花見)’, 여름엔 불꽃놀이 구경인 ‘하나비(花火)’, 그리고 가을에 단풍을 만끽하는 ‘모미지가리(紅葉狩)’가 있다면 열도의 겨울에는 단연코 온천 여행으로 불리는 ‘온센 료쿄(溫泉 旅行)’가 있다.
돌이켜보건대 길고 습한 여름을 나기 위한 일본의 가옥구조는 다다미가 깔려 있는지라 추운 겨울엔 온돌식 난방이 불가능하다. 결국 아랫목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냉방에서 한겨울을 나야 하는 일본인들은 잠들기 전에 욕조에 한참 동안 들어가 몸을 발갛게 데운 후, 그 열기가 식기 전에 이부자리에 드는 방식으로 겨울을 지내왔다.
이와 함께 ‘유단포(湯たんぽ)’라 불리는 보온 물통을 가슴에 끌어안고 잠자리에 드는 것도 냉기 가득한 방안에서 겨울을 보내는 방법이었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온센 료코’로 일컬어지는 온천여행은 그 연장선상에서 명승지도 구경하고 온천욕도 하며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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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방영된 일본 지진대의 모습.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지도에서는 열도 밑에 존재하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
그러고 보니 바로 며칠 전에는 규슈 지역의 신모에다케(新燃岳) 화산마저 분화를 재개해 해당지역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도 지금까지 여러 차례 분화했고 앞으로도 계속 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후지산과 같이 용암류나 화산 방출물이 두텁게 퇴적된 화산엔 온천이 없다는 것. 해서 ‘후지산이 보이는 곳엔 온천이 없다’는 하코네(籍根) 지방의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온 나라를 뒤덮다시피 한 온천 덕분에 온갖 종류의 관련 상품들이 발달한 곳 역시 일본이다. 당일치기 온천여행인 ‘히가와리 온센’에서부터 ‘로텐부로’(노천 목욕탕)는 물론 ‘온천 테마파크’, ‘온천 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상품도 천차만별이다. 필자 가족이 종종 들르곤 했던 지바(千葉)현의 ‘우라야쓰 만게쿄(浦安万華鄕)’란 온천은 퇴근길 직장인을 겨냥해 온천욕과 함께 저렴한 저녁식사를 패키지로 묶어 팔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세계에서 가장 청결하다는 일본인들의 습성에는 풍부한 물과 넘쳐나는 온천이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열도의 온천은 태풍과 지진에 시달리는 일본인들에게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가 준 조그마한 선물인 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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