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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 '민들레 바람되어' 어르신들 발걸음 재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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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2-10 08:27:27 수정 : 2011-02-10 08: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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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는 다 똑같아

 

우리네 엄마들은 연극<친정엄마><친정엄마와 2박 3일><엄마를 부탁해>혹은 뮤지컬<친정엄마>를 쉽사리 구분하지 못하신다. 아니 애써 구분짓지 않으려 한다. 우리 엄마 역시 마찬가지셨다. 조금씩 다른 공연제목을 무조건 <친정엄마>라고 정의내리기도 하셨다.

작년 초부터 정혜선이 나오는 연극 <엄마를 부탁해>를 함께 보자고 했지만 사정상 결국 보지 못했다. 봄기운과 함께 돌아온 선우용녀의 뮤지컬 <친정엄마>도 보지 못한 채 막이 내렸다. 여름이 다가오자 강부자가 나오는 <친정엄마와 2박 3일> 소식을 전해드리니 꼭 볼꺼라고 하셨지만 시골에서 외할머니를 수발드려야 해서 아쉽게도 공연기간을 놓치고 말았다. 가을이 다가오자 김수미, 나문희가 나오는 뮤지컬<친정엄마>보면 되지 하며 활짝 웃음지었다. 하지만 이번엔 여동생 산후조리에 더해 갓난 아이까지 봐줘야 해서 공연장 나들이를 하지 못했다.

추운 겨울이 되자 손숙이 출연하는 연극 <엄마를 부탁해>는 정말 꼭 본다고 하시더니 아버지가 몸이 좋지 않아 서울로 올라오지 못하셨다. 이렇게 2010년을 <친정엄마> 코빼기도 보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2011년이 되어 정영숙과 연운경, 전원주가 나오는 연극 <친정엄마>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이번엔 명절 설날 결혼한 딸네집과, 아들집에 갖다 줄 짐을 바리 바리 챙기느라 진이 빠져 극장행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고선, 이번에는 꼭 볼꺼라고 눈을 번쩍이신다. 엄마에겐 제목 뿐 아니라 출연진, 연출가 및 스텝이 다 다른 위에 언급한 공연이 똑같은 하나의 공연이다.

 

우리 엄마뿐 아니라 50대 이후의 엄마들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였다. 계모임으로 극장 나들이를 하신 50대 중반의 엄마들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나는 (오늘 본) 정영숙 친정엄마 보기 전에 강부자 친정엄마도 봤어""나는 손숙 친정엄마로 봤어""......""춤추는 선우용녀가 나오는 친정엄마도 있다고 하던데?" 이 대화를 엿듣고 웃음이 슬며시 번졌다.

고혜정 원작 김광보 연출의 <친정엄마>는 제목 그대로 친정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엄마보단 못하지만 복숭아 통조림, 양파, 감자등을 보따리 가득 싸온 엄마도 볼 수 있다. 우리 엄마는 버스를 타고 서울에 한번씩 올라올 때마다 사과 박스1, 배 박스1 아이스 박스 1 합쳐 총 3박스의 짐에 추가로 중간 사이즈의 가방에 멸치, 마늘, 깨, 참기름등을 넣어가지고 오신다. 버스 기사 역시 "서울 자식들은 이것보다 더 잘먹고 살 텐데 힘들게 왜 이렇게 짐을 가져가냐?"는 말과 함께 이 많은 짐을 보고 혀를 내두르신다고 한다.

기자 역시 어깨, 다리도 좋지 않으신 엄마가 짐을 싸들고 올때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투정 아닌 투정을 많이 부렸다. 이래저래 바쁜 데 고속터미널로 와서 차로 데려가라고 할땐 "도저히 시간이 안되는데 왜 그러냐?"며 화도 냈다. 연극 속 딸과 같이 글쓰느라 정신없는데 전화로 이것저것 안부를 물어볼땐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정작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다음에 내려올 땐 그것 좀 챙겨오라는 삭퉁머리(버릇없는이란 뜻의 전라도 사투리)말을 건네기도 했다.

 

연극 <친정엄마>속에 색다른 이야기는 없다. 다만 딸 역 배혜선의 커튼콜에서도 계속된 사연이 담긴 눈물, 엄마 역 정영숙의 친근한 엄마 연기에 마음이 들썩인다. 물론 친정엄마를 떠나보낸 관객들의 눈물샘을 더 깊히 파고든다. 울음도 잠시, 서울댁 전원주가 살랑 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등장하면 관객들은 킥킥 웃느라 정신없었다.

우리 엄마는 기자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던 고혜정 작가의 수필 <친정엄마>,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정리하면서는 "니도 니 이름 딱 박혀있는 책 하나 써봐라"하면서 부추기기도 했다. 그래서 말했다. "엄마가 2011년 3월이 가기전에 연극 친정엄마 보고 감동받으면 한번 생각해볼께"라고 답해줬다. 기자도 많은 엄마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친정엄마>와 관련된 책을 쓸 날이 올까?

<민들레 바람되어> 당신이 원하는 부부 이야기

 

남편은 나에게 연애기간과 결혼생활을 통틀어 한번도 꽃 선물을 해 준 적이 없다. 이유는 내가 국도 못 끓여먹는 '꽃'보단 현실적인'돈'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전혀 틀린 말도 아니어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아내인 나에게는 한번도 선물하지 않은 꽃다발을 7세 딸아이에겐 3번이나 갖다 바쳤다. 그것도 아이의 생일날, 화이트데이에 말이다. 딸아이는 "난 꽃 선물 받았는데 엄마는 못받았지?"하며 엄마 속을 긁어 놓았다.  2008년 '연극열전'을 통해 초연된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박춘근 작·김낙형 연출)를 보면서 이런 남편과 딸이 바로 떠올랐다.

남편과 딸아이는 죽이 잘 맞아 엄마는 유령인것처럼 둘이만 이야기할 때도 있다. 결혼생활이 8년째 접어드니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만 서로를 부를 뿐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된다. 서로의 고민 역시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연극 역시 아내가 생전에 좋아했던 꽃을 선물하며 유령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안중기(정보석, 조재현)를 만나볼 수 있다. 처음 중기의 눈엔 유령 아내가 보이지 않지만 사랑을 확인하면서 점차 유령 아내가 보인다. 연극을 보다보면 아내와 남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민들레 바람되어>를 통해 평범한 30~70대까지 한 남자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내 남편 역시 먼 훗날 어느날, 내가 돈보다 '후리지아'와 '라일락'꽃을 너무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죽기 전에 선물할 날이 올까?

 

남편은 아줌마인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연 프로그램을 딸과 함께 들척이며 "여기 여배우들 중 어떤 언니들이 예뻐? 이 배우는 엄마랑 비교도 안되게 예쁘지?"라며 장난을 친다. 안중기과 오지영(김혜지, 김성미)부부가 평생을 간직할 사랑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것처럼 연극을 보며 우리 부부도 그런 사랑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레 추억하게 된다.

안중기는 힘들게 무덤가를 올라온다. 딸의 성장과 결혼을 지켜보며 자신의 마음 역시 변해가는 것을 감지한다. 입으로 '훅' 불면 흩어지는 민들레처럼 부부간의 사랑은 쉽사리 날라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부부간의 사랑은 객석에 자리한 관객들의 마음에 탄탄히 뿌리를 내린다.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기운으로 말이다.

김낙형 연출은 수십번 봤을 자신의 공연 <민들레 바람되어>를 처음 보는 듯 웃으면서 관람한다. 다른 한편으론 연출가의 눈길로 진지하게 감상한다. 반면 관객들은 뒷자리에 앉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와 아줌마들의 울음소리를 리듬 삼아 연극 한편을 감상한다. 노인 역 김상규의 팝송버젼 찬송가를 듣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친정엄마> 공연장과 마찬가지로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은 나이지긋한 어르신들이 극장을 꽉꽉 채우신 채 "맞아 맞아"하며 동감을 내보이셨다.

 

젊었을 때 지지고 볶고 산 노부부가 뒤늦게 사랑을 발견하고 합장묘에 묻히듯, 부부간의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같이 떠돌다가 노부인에 안착한 것 역시 사랑임은 틀림없기에.

안중기 역으로 분한 정보석은 '부부'라는 정의에 대해 "어떨 땐 질식사 하고픈 공기"라고 정의했다. 그 말에 백분 공감이 되어 실컷 웃었다. 그리고 한마디 해주고 싶어졌다. "부부란 인간이라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산소(O₂)이자 질식사 할 정도로 가슴을 옥죄기도 해 입으로 내뱉고 싶어지는 이산화탄소(CO₂)로 이루어진 것 같아요"

한편, 3월부터는 안중기 역으로 분한 영화배우 겸 탤런트 이광기를 만나볼 수 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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