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헌이 송승헌을 연기하다

<마이 프린세스>의 박해영은 승헌이를 닮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송승헌이 연기했던 '승헌이' 캐릭터를 닮았다. <남자 셋 여자 셋>의 승헌이는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몸매에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킹카 중의 킹카이다. <마이 프린세스>의 박해영 역시 그렇다. 많은 졸업장 성적표 그리고 증명서들이 말해주는 완벽한 학벌에, 외교관이라는 탄탄한 직업, 그리고 재벌 후계자라는 배경을 갖춘 역시 100점 만점에 300점짜리 신랑감이다.
<마이 프린세스>의 박해영과 <남자 셋 여자 셋>의 승헌이의 닮은 점은 이것 뿐이 아니다. 반듯하고 고지직하면서 기본적으로 선량하고 착한 성격이 너무나 비슷하다. 또 겉에서 보기엔 완벽한 킹카이지만 연애와 사랑에 서툴다. <남자 셋 여자 셋>의 승헌이에게는 여자친구 대신 같은 하숙집에 살면서 대놓고 사랑을 고백하며 졸졸 따라다니는 여자(이의정)는 있었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이의정의 캐릭터는 비죽비죽한 머리에 4차원 성격을 지닌, 이를테면 '개그' 담당에 가까웠다. 그런 그녀의 4차원적인 성격에 현실감을 채워넣은 것이 바로 승헌이를 향한 짝사랑이다. 남자를 보는 눈이 매우 정확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마이 프린세스>의 박해영은 애정 문제에 돌입하지 않았다. 결혼 예정인 약혼자의 마음도 다른 남자에게 가 있고, 황실 재건을 위해 교육 중인 공주도 짝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 시청자들은 오히려 기쁘다. 송승헌의 매력은 이루어 질 듯 말듯할 때의 코믹한 어색함 속에서 가장 빛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 프린세스>의 박해영은 송승헌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낸 캐릭터이다.
<마이 프린세스>의 송승헌과 김태희는 마치 <남자 셋 여자 셋>의 승헌이와 의정이를 보는 것처럼 익숙하다. 갑작스러운 장 기능 이상으로 생리현상을 참지 못하는, 드라마 여주인공 같지 않은 코믹한 상황들이 웃음을 주는 점에서도 익숙하고 송승헌이 살짝 고자세로 김태희를 대하는 것도 익숙하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승헌이는 천방지축 의정이를 살짝 막 대하고, 의정이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잘보이고 싶어 승헌이의 말을 무조건 잘 듣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그러다가 둘은 결국 사귄다. <마이 프린세스>의 송승헌과 김태희 역시 아직까지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 관계이기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편하게 서로를 대하는 과정에서 웃음을 주고 있지만 매번 다음 회를 기대하게 만든다.
티격태격 하면서 차가운 완벽남의 가면도 예쁘게 깨지고 있고, 자신도 모르게 질투의 감정도 귀엽게 내비치는 송승헌이 언제쯤 김태희에게 사랑을 느낄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점점 더 '나쁜 짓'을 하겠다고 경고를 해 주는 나쁜 남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을 협박이나 경고로 들을 수 있는 여자가 과연 있겠는가. 이런 귀여운 협박을 진지한 얼굴로 할 수 있는 어리숙함 역시 송승헌의 매력이다.
꿀이 들어간 우유처럼 달콤한 소년 이기광

<마이 프린세스>의 큰 귀요미가 송승헌이라면 어린 귀요미는 단연 이기광이다. 전작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도 정음이 '누나'를 짝사랑하던 그는 이번에는 공주 '누나'의 수호천사를 자청했다. 하지만 '누나'라는 말을 거침없이 부르는 도톰한 입술하며, 웃을 때면 반달 같아지는 눈에 윙크와 미소를 동시에 날려주는 개인기에, 공주 누나를 구해주겠다는 의욕과 정의감은 수호 천사라기 보다는 귀염둥이에 가깝다. 게다가 이름 대신 불린 '횟집 소년'이라는 외침은 앳된 얼굴에 또 얼마나 어울렸던가.
어른들로 가득한 드라마 속에서, 아직은 철이 덜 든 공주님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귀여운 활력소가 될 주방 소년 '건'이 덕분에 공주님 뿐 아니라 TV 앞에 앉아 있는 누나들을 충분히 흐뭇하다. 또 짧은 분량이긴 하지만 커다란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또 핑크색 잠옷을 입는 등의 임팩트 있는 비주얼로 마치 꿀이 들어간 우유처럼 누나들의 가슴을 달달하게 사로잡았다. 그의 귀여움 역시 다음 회가 궁금하고 기대되게 만든다.
겨울 내내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차갑고 까칠하고 심각하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남자들 사이로 착하고 귀여우며 덜 심각한 남자들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봄이 오길 기대하며 그들의 따뜻함에 못이기는 척 넘어간다. 체감온도가 조금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사진출처 : MBC <마이 프린세스> 홈페이지
꽃미남 애호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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