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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두번째 오페라 '아랑'과 극적으로 조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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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2-20 15:41:22 수정 : 2010-12-20 15: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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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두번째 오페라 [아랑]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보고 왔다. 첫 오페라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이었다. 처음 접해본 오페라 '나비부인'은 극장에 들어서긴 전엔 생애 첫오페라를 접한다는 기대감에 '흥미'를 유발했지만 막상 극장에 들어선 후에는 '졸음'을 불러왔다. 이해할 수 없는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아리아에 귀와 눈을 쫑긋 세우고 극에 몰입하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결과 극장에서 꾸벅 꾸벅 졸다가 몇몇 관객들이 우렁차게 '브라보'라고 외치는 소리에 놀라 깨기를 몇차례 하다보니 공연은 이미 끝나 있었다. 그 이후 몇년간은 '오페라'란 장르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5년이 지난 후, '오페라'란 장르를 다시 만나고 왔다. 이번엔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아랑](작곡 황호준, 대본 오은희, 지휘 김주현)이다. '오페라는 졸음으로 이어진다'이라는 선입견을 깰 수 있을까? 날 극장으로 이끈 지인은 '연극보다 재미있는 창작 오페라이다'며 나에게 기대감을 갖게 했다. 의심만 기대반의 감정으로 극장에 들어섰다.

 

오페라 [아랑]은 고대소설 ‘장화홍련전’의 근원이 되기도 한 경상남도 밀양지방의 ‘아랑설화(阿娘說話)’ (관노에게 성폭행 당하여 대숲에 버려져 죽음을 맞은 소녀 아랑의 진실을 현명한 부사가 밝혀내 그 원혼을 달래었다)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기본적인 정보만 알고 오페라를 보기 시작했다.

 

9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① 초반: 음산한 분위기의 오페라인가? 또 졸다가 끝나면 안되는데...→②10분 후:우리말로 듣는 오페라는 자막을 보지 않아도 되니 눈이 안피곤하내.→ ③30분 후: 노래를 안부르는 순간에도 쉬지 않는 김판서의 아들 김유석의 눈빛연기와 표정 연기로 인해 저 놈이 범인이라는 암시가 눈에 쏙쏙 들어오내. 합창(모스트보이시즈)은 관객의 예감을 확신으로 굳어지게 하는군→④60분 후: 대중들과 친근하지 않은 오페라에 더 어려운 무용이랑 소리까지 함께 들어있으면 점입가경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해하기가 더 쉽내. →⑤ 카운터 테너 최경배(김유석 역), 테너 전병호(이부사 역)의 대조적인 목소리와 캐릭터에 빠져서 극에 몰입하다보니 벌써 막이 내리내. 언제 시간이 흘러간거야?

[아랑]은 '오페라'란 장르에 대해 새롭게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는 경험을 갖게 했다. 시종일관 노래로만 진행되는 오페라란 장르에 대해 거부감만 갖고 있었던 내게 이번 작품은 '아! 일반인들도 오페라에 쉽게 다가설 수 있겠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인터미션 없이 90분을 긴장감있는 음악을 작품 안에 절묘하게 삽입해 관객들로 하여금 몰입하게 한 점 역시 박수치게 만들었다. 동시에 오페라에 문외한인 내게 오페라 속 독창, 이중창, 합창, 서창(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등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피부로 느끼게 만들었다.

 

이번 작품에서 이승의 한을 풀지 못하고 원혼이 된 주인공 아랑은 1명이 아니다. 소프라노, 무용수, 소리꾼 3명이 '아랑'을 입체화시켜 보여주고 들려준다. 먼저 새로 부임된 이부사 앞에 나비가 날아드는 장면으로 아랑의 존재를 무대에 가져온다. 그 이후 죽은자와 함께 사는 자인 무녀를 통해 아랑의 혼을 불러낸다. 즉, 관객들은 무녀 역을 한 소프라노 한혜진의 노래로는 아랑의 숨겨진 사연을 알아차리고, 무용수 옥지윤의 춤으로는 아랑의 내면에 들어서게 된다. 추가적으로 경기민요 이수자 최수정의 소리로 아랑의 원한(怨恨)서린 울음에 한발짝 다가서게 된다. 특히 무용수 옥지윤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무대 가운데에 자리한 연못과 조명, 음산한 대나무 숲이 미장센 역할을 톡톡히 하며 극이 진행된다.

오페라 [아랑]은 '카운터테너'(특유의 발성법을 연마해 가성으로 곱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남성가수) 존재감 역시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예전엔 '카운터테너'하면 남자가 부르는 고음의 아리아가 인상적인 영화 '파리넬리'가 바로 떠오를 뿐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했다. 이번 작품으로 인해 '카운터테너'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었다. 특히 [아랑]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사건을 해결하는 이부사의 테너음과 대비를 이루면서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킨 점은 오페라의 문턱을 한결 낮췄다고 볼 수 있다. 극장 로비에는 [아랑] 3D체험관도 마련되어 보다 생생하게 극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었다.

날 2번째 오페라의 세계로 이끈 지인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가 오페라 [아랑]의 네번째 버전으로 이번엔 김유석이란 인물이 새롭게 추가됐다고 알려줬다. 특히 현란한 무대 장치로 관객의 눈만 현혹시킬 뿐 정작 가수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오페라의 진짜 매력을 살리지 못하는 오페라도 많은 데 이번 작품은 테너 전병호, 카운터 테너 김유석 외에도 메조 소프라노 백재은(시월이 역), 바리톤 조병주(김판서 역), 테너 강신모(이방 역), 테너 민경환(돌쇠 역)의 실력이 눈에 들어오는 오페라였다. 계속 수정을 해가면서 발전을 이뤄가고 있는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아랑]의 다음 버젼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젠 연극이나 뮤지컬에만 열광하는 것이 아닌 오페라 공연에도 환호를 보내게 될 듯 하다. 추후 국립오페라단은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아듀! 2010 갈라]공연을 선보인다. 1부에선 2010년에 국립오페라단에서 올려졌던 W.A. Mozart의 이도메네오, G. Donizetti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G. Verdi의 맥베드, C.W. Gluck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M. Ravel의 어린이와 마법, A. Berg의 룰루, A. Boito의 메피스토펠레를 만나볼 수 있다.

2부에선 2011년에 국립오페라단에서 올려지는 작품을 미리 만나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V. Bellini의 청교도인, C. Gounod의 파우스트, F. Poulenc의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L'Elisir d'Amor의 사랑의 묘약, R. Wagner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G. Puccini의 투란토트, G. Verdi의 시몬 보카네그라가 그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31일 공연 2부에선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연주하는 피아노와 소프라노 박은주, 임세경 카운터 테너 이동규, 테너 김재형, 정호윤 바리톤 고성현, 우주호 등 최고의 성악가들이 함께 펼치는 특별한 시간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1, 2층 좌석5만원/ 3, 4층 좌석 3만원이라는 파격 가격 역시 관객들의 구미를 자극한다. 2010년 마지막은 오페라와 함께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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