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정치권 정신차려야

G20은 건국 이래 최대 최고의 귀빈을 안방으로 초대한 행사였다. G20의 성공적 개최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혼란을 겪고 우뚝 일어선 대한민국의 위상을 웅변으로 말해 준다. 이제 우리도 굴종의 역사를 청산하고 당당하게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찾아온 귀빈을 잘 모시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다만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이 있듯이 손님에게 지나친 환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외국에 다녀보면 우리만큼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나라나 국민도 드물다.
G20 정상회의 첫날 만찬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5000년 민족의 숨결과 문화를 간직한 대한국민의 위대한 역사와 저력을 외국 귀빈들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국보를 모신 박물관에다 식당을 차려 놓은 게 영 어색하다. 온갖 풍상을 거친 민족문화 유산 앞에서 옷깃을 여며야 마땅할 텐데 건배잔을 주고받는 자리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영부인들의 만찬 장소는 대한민국 최고 재벌기업인 삼성그룹 산하의 삼성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리움’ 미술관이었다. 세계적인 기업 삼성을 선전하는 좋은 장소일지는 몰라도 국가적 귀빈들을 특정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에 모시는 것은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아쉬움에도 G20은 자화자찬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우리 사회에 독서열풍을 가져 올 정도로 국민들은 정의에 목말라한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취임과 더불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화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 그만큼 정의 사회 구현은 어려운 국가적 어젠다(의제)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화두로 제시하면서 정의와 공정은 더욱 상승작용을 동반한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청목회를 통한 정치자금의 수수가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낸 공직윤리비서관실의 민간인에 대한 불법사찰에 더하여 청와대 직원이 일반 국민도 금기시하는 대포폰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 누구보다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직에 있는 이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라 더욱 국민들을 분노케 한다. 검찰의 생명은 살아있는 권력에 메스를 가하는 데 있다. 허황된 극중 인물이긴 하지만 ‘대물’에서 보여준 ‘하도야’ 검사의 인기가 바로 검찰의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 권부에서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그 불법행위에 엄중한 법의 잣대가 작동되지 않는 한 공정사회나 정의사회는 형식적 구호에 그칠 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지고, 법과 원칙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지난 60년간 우리는 앞만 바라보고 질풍노도 같은 삶을 살았다. 이제 우리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서 차분하게 자신의 주변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때가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G20의 성공적 개최에 들떠 있을 게 아니라 조용히 미래를 향한 도약의 전환기로 삼아야 할 때다. 이명박 정부의 외치가 성공적으로 작동됨에도 내치는 한계를 드러낸다. 병세가 깊어지면 외과적 수술이 불가피하다. 내부에 싹트는 병을 치유하지 않고는 더 이상 선진민주국가로의 진입은 힘들다. 여의도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털고 우선 주변부터 깨끗하게 정리해야 한다. 의혹에 의혹을 무는 과정에 국정은 누수현상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의 정신적 재무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대 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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