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거부한 안빈낙도의 삶 오롯이 “요즘 절집도 문명에 종속되고 있습니다. 스님이 고급 차를 몰고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질문명을 거부했기에 전기도 수도도 없는 산골에서 산다는 육잠(52) 스님은 9일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인 ‘청빈’을 알리기 위해 전시회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경남 거창군 가북면 덕동 수도산(1350m) 자락 해발 850m 지점의 ‘두곡산방’을 거처로 현대 물질문명과는 담을 쌓고 생활하는 육잠 스님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 화봉갤러리에서 ‘생명불식(生命不息)’이라는 타이틀로 작품전(3∼16일)을 열고 있다. ‘생명불식’은 살아 있는 것은 쉬지 않는다는 뜻으로, 끊임없는 자기 추구를 표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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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수도도 없는 산속에서 농사지으며 서화를 벗삼아 사는 육잠 스님. |
한때 작은 절에서 주지의 소임을 수행했던 그는 “문명이 인간을 얼마나 이롭게 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며 “인간의 본성이 문명에 종속되는 느낌을 갖게 돼 산속으로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문명을 거부한 그의 생활은 단순하다. 농사짓고 자연을 벗삼고, 좋아하는 서화와 책을 읽으며 보내는 나날들이다.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육잠 스님이지만 산속 생활에서 두 가지만큼은 챙긴다. 바로 가스와 라디오다. 가스는 땔감이 넉넉지 않은 산속에서 밥을 지을 연료로 더 없이 유용하고, 라디오는 일기예보를 듣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는 “전시회를 통해 돈벌이를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며 “다만 물질문명 속에서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청빈의 가치를 알리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선어록, 한시 등을 초서나 전서 등으로 써내려간 서예 작품과 두꺼비, 새 등의 그림은 그의 안빈낙도하는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육잠 스님은 “전시된 60점 가운데 富貴於我浮雲(부귀는 나에겐 뜬 구름), 一日不作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작품에 특히 애착이 간다”고 했다.
“전시회 준비하고 자리를 지키다 보니 겨울철 땔감도 못 마련하고 김장도 못했다”고 말하는 육잠 스님은 “다행히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작품이 잘 팔리게 돼 적자는 보지 않을 것 같다”고 웃었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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