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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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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27 10:09:58 수정 : 2010-10-27 10: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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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게이', 혹은 '레즈비언'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즉, 실제 상황이 아닌 어떤 캐릭터의 틀을 씌어 동성애자를 바라보거나, 세상 어딘가엔 이런 인생을 가진 이들도 있겠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호기심 반, 뭔가 꺼림직한 기분 반반이 더 정확할 듯 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인공들은 힘든 사랑의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극중에선 부모님 외 주변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받게 되며, 드라마 밖에서는 동성애 코드가 시청자인 자신의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고 기가막힌 욕을 듣게 된다.

그러던 중 실제 양성애자를 눈 앞에서 만났다. 어떤 사전정보도 없이 뮤지컬 한편 보러오라는 친구의 말에 극장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나는 뮤지컬 전문가도 아니고 매니아도 아니다.

뮤지컬 [위드아웃유]는 앤서니 랩이라는 양성애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극 중 인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양성애자라는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무대에서 직접 연기한다. 연기라기 보다는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이 외에도  안소니 랩이 출연했던 뮤지컬 [렌트]의 대성공으로 인한 기쁨, [렌트]의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갑작스런 죽음과 사랑하는 어머니의 암투병으로 인한 깊은 슬픔 등 모두 안소니 랩의 실제 이야기를 모노 뮤지컬로 풀어냈다.

처음엔 여타의 뮤지컬과 같이 매 노래가 불려지고 난 후 다들 박수를 치니 나 역시 따라서 박수를 치고, 잘생긴 배우들의 외모도 감상하고, 화려하고 멋진 무대 장치에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약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즐기고 와야지'라는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내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실제로 난 뮤지컬 [위드아웃유]가 모노 뮤지컬인지도 몰랐을 뿐 아니라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뮤지컬인지도 몰랐다. 더더군다나 [위드아웃유] 속에 담긴 또 다른 뮤지컬 [렌트]의 내용 역시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나보고 이렇게 우매한 관객이 있나? 하고 말할지 모르나 이렇게 사전지식 없이 우연히 공연을 보게 되는 관객도 있기 마련이다.

이번 작품을 감상하면서 처음엔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으로서 매 장면마다 박수를 치지 않아서 좋았다. 그동안 몇번 뮤지컬을 보진 않았지만, 왜 그렇게 꽉 짜여진 각본처럼 배우들은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은 중간 중간 박수를 쳐주어야 하는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자발적인 박수가 아닌 형식적으로 하는 관객들의 그러한 행동이 소모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었다. 공연 중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 배우들의 마지막 무대인사에서만 감사와 환호의 박수를 보내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위드아웃유]는 두가지 부분에서 진심어린 박수를 칠 수 있었다. 첫째는 감정을 과잉적으로 들어내지도 않고 지나치게 건조하게 보이지도 않으면서 연기자 안소니 랩과 인간 안소니 랩을 정확히 구분해서 무대로 불러낸 점, 두번째는 나로 하여금 양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깨게 해 준 점에서 열심히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안소니 랩은 의자 2개만으로 시공간을 왔다 갔다 했을 뿐 아니라 자신 주변 인물들을 능청스럽게 불러냈다. 무대 뒤에 자리한 밴드를 휘감고 있는 전선은 각 이야기마다 다른 조명을 내보이며 이 곳이 어디임을 알게 했다. 초록색 조명 전선이 나오면 아픈 엄마 이야기가 들려지고, 주황색 전선이 나오면 [렌트]의 뒷이야기가 들려지는 식이다.

뮤지컬 속에선 '라비 보엠'이 불려진다. 가사 속엔 '게이, 레즈비언들을 위하여...병에 걸려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란 문구가 있다. 대개 뮤지컬 넘버는 화려하게 포장된 채 사랑을 찬양하는 내용이거나 애절한 사랑에 눈물흘리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위드아웃유]는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위드아웃유]이라는 극 속에 나오는 뮤지컬 [렌트]의 가사이다.

작품 속에선 안소니 랩이 겪었던 양성애자의 고민(양성애자라고는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선 여자보단 남자를 더 사랑하는 게이 느낌이 강하다)을 억지로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는 숨어서 몰래하는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남자친구와 자신 인생의 모든 부분을 나누고 싶어한다. 가족인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엄마가 놀랄 것을 염려해 숨길 수도 있었지만 그는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며 엄마의 마음이 천천히 열릴 것을 기다린다.

안소니 랩은 양성애자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는 거북함과 두려운 감정을 본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아들이 겪고 있는 특별한 사랑으로 인해 엄마가 겪게 될 혼란스런 마음을 배려하면서 커밍아웃을 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꿋꿋히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바꿀 수 없는 무언가 즉 '양성애자'라는 현실에 대해 화내고 거부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말이다.

아들 안소니 랩은 엄마가 걱정하는게 뭔지 안다. 그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을게요"라고 말하면, 엄마는 "조심해야 한다"라고 답한다. 그 후 에도 엄마의 고민과 고통은 계속된다. 물론 조금 달라진 게 있다. 엄마는 아들의 성적취향에 대해 눈이 파란색이거나 갈색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 다른 부분이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한번 들으면 전율이 오게 만드는 뮤지컬 넘버 '시즌즈 오브 러브'에 나온 가사 그대로 안소니 랩은 '오십이만 오천 육백분의 소중한 시간들'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었다. 작가가 정해준 캐릭터가 아닌 완전히 본인의 고민을 극 속으로 가져와 '게이'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부도덕함' 게이들은 음지에서만 살아갈 거라는 일반인들의 편협한 시각을 깨주면서 게이들의 아름다운 인생이 있음을 알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오직 오늘 밖에 없다면서 No Day But Today를 이야기했던 안소니 랩처럼 소중한 오늘을 축복하며 내 주변의 사람들 특히, 아픈 엄마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공연 전문기자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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