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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과 섹스력, 미혼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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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20 09:02:21 수정 : 2010-10-20 0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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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땐, 마치 지성(brain power)이 묻어나올 것 같은 '번듯한 콧날'과 세상 모든 고독이 담겨있는 남자의 '외로운 눈'에 반했다. 30대를 코 앞에 둔 지금은 깔끔한 입술과 섬세하게 쭉 뻗어있어 정갈한 느낌을 주는 손가락을 가진 남자에게 끌린다. 여기에 하늘을 향해 업(up) 되어있는 탄탄한 엉덩이와 떡 벌어진 어깨를 소유한 남자라면 금상첨화이다.

연극[오월엔 결혼할꺼야](연출 반능기)에선 먼저 결혼한 사람에게 몰아주기로 한 적금 3,825만원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야 하는 29살 여자 3인방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정은(재경, 고나은 분)이 말한다. "이제 우리 나이에 남자를 보는 기준은, 내가 이 남자와 잘 수 있냐, 없느냐야."

이 대사를 듣고 박수를 치며 공감을 표했다. 나 역시 남녀 사이의 짜릿한 스킨쉽을 경험하기 전에는 그저 그 남자가 보여주는 얼굴 이미지가 전부였다. 이성을 선택하는 기준이 소위 말하는 호감형 인물에 부합하면 'OK'였다. 연인이 되면 으레 거치게 되는 스킨쉽 절차가 내가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그 오래 전 이야기이다.

나의 입술이 저 남자의 입술에 닿을거라는 찌릿한 상상, 곧 저 남자의 품에 안기게 될 거라는 설레임, 저 남자의 손이 내 신체를 어루만질거라는 기대감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성을 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단순히 '섹스력'으로 뭉쳐 말하기엔 애매한 저 남자의 입술과 가슴, 손가락의 생김새도 이성을 선택하는데 큰 기준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더해 29살이 되고, 단순히 남자친구를 구하는게 아니라 결혼 상대자를 찾게되니 상대를 보는 기준이 참 많이도 달라졌다. 아무리 남자는 '경제력'이 최고라고 외쳐되도 평생을 함께 할 상대를 찾는데 있어 남자의 경제력만 따질 순 없다.

연극 속에서 세연(박채연, 송지영 분)은 지희(허지나, 박서연 분)가 적금을 다 가로채가기 전에 먼저 결혼을 하고자 한다. 연극적 과장 역시 느껴지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이렇게 급하게 결혼하는 사람들 종종 볼 수 있는 게 사실. 연극 무대에선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 나오는 복녀 이야기를 장난스럽게 들려준다. 소설 속 복녀가 결국 왕서방한테 팔려갔다가 죽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결혼에 팔려가는 29살 청춘들에 대한 냉소적인 웃음 역시 담겨있다.

세연은 급하게 결혼상대 리스트에 올린 남자를 하나씩 만나본다. 총 4명이지만 멀티맨(김동준, 유건우 분)이 4명 역할을 다 해 결국엔 '그 놈이 그 놈'이 되어 한명으로 보여진다. ① 탄탄한 경제력에 외모 역시 멋지지만 거만한 대기업 직원 선배, ②예전엔 그저 남자 아이였지만 이젠 남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옛 과외제자, ③우황청심환과 끈질긴 인연을 맺게 해준 옛 연인 진석 ④ 볼거 안 볼 거 다 본 오랜 친구 성호가 그들이다.

첫번째, 대기업에 다니는 선배는 외모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멋지다. 하지만 자신 밑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자신 위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할 뿐 아니라 여자의 외모에 대해 자기만의 판타지가 있다. 만약 결혼으로 골인한다 해도 잠자리를 트러블 없이 해 나간다는 보장은 전혀 없어보인다.

두번째, 6살이나 어린 남자아이이다. 그래도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남자. 경제력보다 섹스력이 뛰어날 것처럼 보인다. 음악에 대한 열정인지 섹스에 대한 열정인지 아무튼 '열정'을 높히 사 결혼 상대로 점 찍었으나 결국 당했다. 20대 젊은 남자의 시각과 30을 코 앞에 둔 여자의 시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세번째, 과거의 어느 날 연인관계이기도 했던 진석, 이 남자는 갑작스런 결별로 세연의 인생에 크나큰 구멍을 뚫은 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경제력도 안정기로 접어들었겠다. 예전의 스킨쉽 경험도 있어 적응하기 힘들지 않겠다. 어긋난 인연을 원래대로 맞추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이건 세연만의 착각이었다. 다들 자신의 눈높이에서 상대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네번째, 경제력, 섹스력 다 평균 이상을 웃돌지 못할 것 처럼 보이는 성호라는 친구이다. 모르는 남자랑 평생을 맞춰가며 사느니 오랜 시간 알고 지내 서로의 취향에도 익숙해 백보 양보 한 셈 치고 결혼 상대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술 기운도 빌리고 외로움도 핑계삼아 친구의 선을 넘은 멘트를 던졌다. 그런데 성호가 받아준다. 그래서 이젠 진심을 담아 한마디 던졌다. 그랬더니 정색을 하며 세연을 무안하게 만든다.

연극 속에서 세연이 이 네명의 남자들과 만나는 장면은 상당히 연극적이다. 결혼 상대 리스트에 오른 남자들은 사이드에 있는 커튼을 밀고 나오는데, 이때 바퀴가 달린 무대에 앉아있는 채로 등장한다. 세연의 결혼 상대로선 X라는 낙인이 찍히면 바퀴 달린 무대에서 천천히 사라지는 식이다. 대신 마지막에 등장한 성호는 무대뒤로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려는 도중 벌떡 일어나 두 발로 걸어나간다. 세연과 사이에 일말의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음을 암시했다.

또한 2층 형태로 구성된 무대의 조립식 판이 뒤집혀지고 열리면서 각 캐릭터를 상징하는 표시판을 볼 수 있다. 표시판 불빛들이 하나 하나 다 꺼진 후 친한 친구 성호를 만나고 온 후에는 회전형 교차로를 나타내는 교통표시 불이 깜빡인다. 세연과 성호가 친구 사이로 다시 돌아가든 보다 적극적으로 연인관계를 타진해보든 확실한 건 없다.

연극 [오월엔 결혼할꺼야] 속 세연은 결국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다. 지희가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변태 성향을 뒤늦게 발견하고 기겁한 것처럼, 4명의 남자는 오히려 결혼 상대로선 만나지 말아야 할 리스트였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결혼'이라는 최종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안내해주는 휙휙 지나가는 '이정표' 같은 사람이었을수도 있다.

[오월엔 결혼할꺼야]는 '그 놈이 그 놈'인 놈들에 대한 따끔한 비판에 통쾌함이 느껴지는 연극, 가상의 결혼 상대자를 연극 속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연극으로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미혼인 당신은 경제력, 섹스력 어디에 더 끌리는가?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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