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이 최선 정책’ 교훈 얻어야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서 전사한 미 프로풋볼 선수 팻 틸먼을 소재로 한 기록 영화 ‘틸먼 이야기(The Tillman Story)’가 20일(현지시간) 미 전역에서 개봉됐다.
2002년 자원 입대할 당시 애리조나 카디널스 소속이었던 팻 틸먼은 시쳇말로 잘 나가는 선수였다. 2000년 시즌엔 태클 224회로 팀 신기록을 달성, 팀의 간판 수비수 자리를 굳혔다. 2000년 시즌이 끝나자 세인트루이스 램스는 5년에 900만달러의 연봉을 제시하며 이적을 권했다. 카디널스는 2001년 말, 360만달러의 연봉으로 3년 계약을 제의했다. 하지만 그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2002년 여름, 육군 특수부대 레인저스에 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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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규 워싱턴특파원 |
그는 죽어서 영웅이 됐다. 장례식은 미국 사회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에게 은성 훈장을 수여했다. 팻 틸먼 ‘영웅 만들기’는 스탠리 매크리스털 당시 아프간 미군 사령관의 묵인하에 이뤄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 미군 당국은 팻 틸먼이 아군의 오인 사격에 의해 숨졌다고 정정 발표했다.
영화는 팻 틸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주인공은 어머니 메리 틸먼이다. 메리 틸먼은 군 당국이 아들의 죽음을 선전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전사 경위를 조작했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진상 규명 투쟁을 전개한 장본인이다. 미 의회가 2007년 뒤늦게 팻 틸먼 전사 경위 조작 관련 청문회를 연 것도 메리 틸먼의 작품이다.
메리 틸먼은 “이 영화는 아들 팻이 조작된 우상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군대와 정부는 그의 죽음에 대해 거짓을 말했고 그의 죽음을 잔인하게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팻과 같은 사례는 지금도 미국 군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군은 수많은 전사자 유족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리 틸먼의 분노엔 십분 공감이 간다. 아들의 전사 경위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뒤, 메리 틸먼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정치권 등을 상대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하지만 군의 사기와 아프가니스탄 전황 악화 등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 아래, 진상 규명 작업은 사실상 유야무야됐다. 메리 틸먼은 아들의 전사 경위를 왜곡하는 데 앞장섰다고 확신한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군에 대한 불신감을 키웠다.
지금도 팻 틸먼의 정확한 전사 경위는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 그의 전사 초기, 목격자 진술 등이 통째로 왜곡됐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팻 틸먼의 상징성을 고려해 그의 죽음을 미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팻 틸먼 전사 경위 조작 사건은 미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도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팻 틸먼이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숨졌어도 그는 영웅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영화는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금언을 상기시킨다. 진상 왜곡 전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군 당국과 국회 인사청문 대상에 오른 장관 후보자들도 팻 틸먼 사건에서 정직의 교훈을 얻을 일이다.
조남규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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