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여년 전의 일이다. 수 문제 양견은 오만했다. 북방 유목민 왕조와의 싸움을 끝낸 그는 양자강 남쪽의 한족 왕조 진(陳)까지 쓰러뜨리며 중원을 통일했으니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그 역시 북방 유목민인 선비족이었다. 이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맞수’ 고구려에 국서를 보내는 일이었다. “짐이 마음만 먹으면 고구려를 멸할 수 있지만 순순히 타이르니 고구려 왕은 스스로 깨달으라.” ‘800년 제국’ 고구려를 모욕하는 글이었다.
고구려의 영양왕은 노했다. 병마원수 강이식이 말했다. “칼로 회답해야 할 글이다.” 598년 고구려는 마침내 군사를 일으켰다. 국운을 건 고구려와 수의 패권 전쟁은 이로부터 시작됐다. 강이식이 이끈 고구려군 5만과 말갈 기병 1만. 그들은 30만명을 동원해 반격에 나선 수 군대를 임유관(산해관)에서 대파했다. 열에 아홉이 죽었다고 하니 수 군사의 시체는 산을 이루었다. 수의 군량선을 격파한 고구려 수군은 등주에 상륙했다. 등주는 지금의 산둥성 펑라이(蓬萊)다. 바다 신기루가 자주 나타난 까닭에 당 태종이 신선을 모시는 봉래각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이때 고구려 수군이 등주로 간 공격 루트가 ‘바다의 성’ 비사성(랴오닝성 다롄)에서 등주를 잇는 열도인 ‘묘도(廟島)열도’다. 130여년 뒤에는 발해의 장군 장문휴가 이 루트를 따라 당의 등주를 다시 공격한다. 아버지 양견을 살해하고 황제에 오른 수 양제, 안시성 싸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당 태종의 수군도 이 열도를 따라 고구려 영토로 들어왔다. 묘도열도에는 오만한 중국에 대항한 우리 선조의 투쟁 역사가 서려 있다.
중국이 묘도열도를 잇는 다리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펑라이∼랴오닝성 뤼순을 잇는 다리다. ‘바다의 만리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펑라이∼뤼순의 직선 거리는 106㎞. 32개 섬을 잇는 다리 길이는 약 170㎞에 이른다. 이 다리 건설은 산둥성, 랴오닝성, 베이징·톈진을 잇는 발해만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묘도열도. 선조들이 나라를 지키고자 피를 흘린 곳이다. 지금은 중국 땅이다. 중국 땅으로 못 박자니 동북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역사 날조가 이뤄지고 있다. 그곳에 세워지는 바다 만리장성. 어찌 착잡하지 않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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