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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중의 아프리카 로망] 탄자니아 잔지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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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부터 아프리카서 가장 번성한 항구
탄자니아의 동쪽 해안에 자리 잡은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은 탄자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케냐의 뭄바사, 모잠비크의 마푸토와 함께 동아프리카의 3대 항구이기도 하다. 다르에스살람은 아랍어로 ‘평화의 항구’라는 뜻. 하지만 다르에스살람은 이름과 달리 200만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분주하고 떠들썩한 항구도시다.

◇잔지바르 명물 가운데 하나인 포장마차 장터. 기다란 골목길에 오징어·새우·문어 등 수산물꼬치구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다르에스살람은 1866년 본토에 항구를 만들기 원했던 잔지바르 섬의 술탄(무슬림국가의 군주)이 만들었다. 다르에스살람은 과거 오만, 독일, 영국에 의한 식민지 역사의 흔적과 다민족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르에스살람은 1961년 탄자니아(당시 이름은 탕가니카)가 독립한 이후에도 탄자니아의 수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셈이다. 사실 다르에스살람은 볼 것이 그리 많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여행객은 잔지바르 섬으로 가는 중간기착지로 다르에스살람을 거쳐 간다.

다르에스살람에서 하룻밤을 묵고 오전 늦게 숙소를 나와 잔지바르 섬으로 가는 페리선착장으로 향했다. 오전이지만 전형적인 열대 해안기후를 보이는 잔지바르의 날씨는 덥고 후텁지근했다. 잔지바르 섬은 다르에스살람에서 불과 35㎞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페리로는 90분 걸리는 거리다. 35달러를 내고 배표를 산 뒤 페리 안으로 들어가니 여권과 짐을 검사한다. 다르에스살람 항구를 떠난 페리는 한동안 해안가를 따라 항해를 하더니 드넓은 인도양 안쪽으로 들어간다. 페리 안쪽에 앉아 창문을 통해 바다 구경을 하고 있는 사이 저 멀리 하얀색의 건물이 늘어서 있는 잔지바르 섬이 보인다.

어느덧 페리는 속도를 늦추면서 선착장으로 들어간다. 페리에서 내리니 출입국관리소가 보인다. 잔지바르는 오랫동안 독립국이었기 때문에 잔지바르 섬에 들어가려면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오늘날의 탄자니아는 1961년 독립한 탕가니카(Tananyka)와 1963년 독립한 잔지바르(Zanzibar)의 이름이 합쳐져 만들어진 나라다.

선착장을 나오니 ‘파파시’라고 불리는 호객꾼들이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한 파파시가 배낭족이 많이 묵는 점보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다. 필자 또한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를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 파파시를 따라가기로 했다. 10분 정도 땡볕을 맞으면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방이 모두 나갔다고 한다. 파파시와 함께 1시간 동안 땀을 흘려가며 잔지바르의 옛 시가인 스톤타운의 골목을 누비면서 숙소를 찾아다녔지만 모두 방이 없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잔지바르 뮤직페스티벌 때문이라고 한다. 할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스톤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수산시장 쪽으로 이동해 호텔방을 잡았다.

◇옛 아랍식 요새에서 열리는 잔지바르 음악페스티벌.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밴드들의 연주 소리는 잔지바르 섬의 이국적인 분위기만큼 색다르게 들려온다.
잔지바르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영한 항구다. 8세기부터 페르시아인·아랍인·중국인·인도인이 다우선(무역범선)을 타고 잔지바르 섬을 오갔다. 이들은 구슬·의류 같은 물품을 가져와 잔지바르 섬에서 나오는 거북 등딱지·흑단·상아·향신료·표범 가죽·노예 등과 교환했다. 향신료와 노예무역은 잔지바르에 많은 부를 가져다 주었다.

잔지바르의 원래 이름은 운구야(Unguja)였다. 잔지바르라는 이름은 노예무역 당시 생긴 말이다. ‘잔지바르’는 페르시아 말로 ‘흑인들의 해안’, 즉 ‘흑인들의 땅’이라는 뜻. 1830년에서 1873년 사이에 약 60만명의 노예들이 잔지바르에서 팔려나갔다. 오늘날 영국성공회 성당 건물이 세워져 있는 스톤타운의 옛 노예시장 터와 노예 지하수용실은 과거 노예들의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곳 가운데 하나다.

오후 늦게 숙소에서 나와 한참 동안 바다를 끼고 걸어가니 잔지바르의 수도이자 옛 도시인 스톤타운(Stone Town)의 모습이 보인다. 스톤타운은 잔지바르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일 뿐 아니라 여행객의 발길이 빈번한 곳이다. 잔지바르는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아왔으나 아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잔지바르 사람의 97%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이를 설명해 준다. 오늘날 잔지바르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은 잔지바르가 인도양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중심지가 된 19세기에 아랍의 해상왕국이었던 오만의 술탄이 세운 것이다.

1861년 잔지바르는 오만에서 갈라져 독립적인 술탄의 나라가 됐다. 1890년 영국의 보호령이 됐다가 1963년 독립국이 됐다. 잔지바르는 그다음해 당시 본토의 탕가니카공화국과 합치면서 이름도 탄자니아로 바뀌었으나 잔지바르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의 독립된 나라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스톤타운의 옛 시가는 18∼19세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랍인들이 만든 하얀 석조가옥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스톤타운’이라고 불린다. 스톤타운의 옛 시가는 좁고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길로 이루어져 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두꺼운 벽과 하얀 색으로 칠해져 있는 아랍식 건축물이 눈에 띈다. 특히 꽃, 물고기, 나뭇잎을 새겨 넣은 목제대문의 디자인이 독특하다. 거리 사이에는 카페나 선물가게가 늘어서 있어 한가로이 골목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구경하면 된다.

◇잔지바르는 예부터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영한 항구다. ‘잔지바르(Zanzibar)’라는 이름은 노예무역 당시 생긴 말로 ‘흑인들의 해안’이라는 뜻이다.
스톤타운의 옛 시가를 구경하고 해안가 쪽으로 걸어가니 넓은 공원이 보인다. ‘포로다니 가든(Forodhani Gardens)’이라는 해안가 공원이다. 공원의 뒤쪽은 1883년 세워진 술탄의 궁전인 ‘경이의 집(House of Wonders)’과 아랍식 요새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가니 잔지바르 음악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그리 화려한 야외음악당은 아니지만 옛 요새에 마련된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밴드들의 연주소리는 잔지바르 섬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어울려 색다르게 느껴진다.

한참 동안 음악을 듣고 나서 요새를 나오니 꼬치구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포장마차 장터는 투어가이드북에 소개될 정도로 잔지바르의 명물 가운데 하나다. 원래는 포로다니 공원에서 매일 밤 열리는 장터인데, 필자가 찾아갔을 때에는 공원이 공사 중이라 요새 옆으로 장소를 옮긴 것이다. 제법 기다란 골목 양쪽 길가에는 오징어·새우·문어 등 수산물 꼬치구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포장마차의 흐릿한 불빛과 꼬치구이의 연기가 더해져 길거리 포장마차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외국 여행객들이 앉아 있는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고 꼬치구이 여러 개를 주문했다. 날씨도 덥고 해서 혹시 맥주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음료수 외에 술은 팔지 않는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잔지바르가 이슬람신자의 땅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분위기도 좋고 값도 저렴하지만 술 한 잔 없이 맛난 꼬치구이를 먹으려니 곤혹스럽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그리운 잔지바르의 밤이었다.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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