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방화로 문루가 불탄 숭례문을 복원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 지난 4월1일부터 문루를 떠받치는 기초시설인 육축(陸築) 인접지역 800㎡를 발굴조사한 결과 조선전기 숭례문이 처음 들어설 당시 육축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고 30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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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문루를 떠받치는 기초시설인 육축 인접지역을 발굴조사한 결과, 현재의 지표(점선)보다 160㎝ 아래 지점에서 육축 기초부와 지대석, 석재 1∼2단이 확인됐다. 허정호 기자 |
태조 이성계 시대에 숭례문을 처음 만들 때의 육축 기초 지대석(址臺石·바닥에 깐돌)과 문짝 문설주가 꽂힌 바닥돌인 문지도리석은 현재의 지표면 160㎝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조사를 통해 그동안 땅속에 묻혔던 숭례문 육축 석재 1∼2단이 새롭게 발견됨으로써 숭례문 육축(현재 높이 6.4m)은 8m(지대석 상면 기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숭례문의 기초는 원래 지반인 황갈색 풍화암반층을 숭례문 너비보다 넓게, 그리고 약 1m 깊이로 파낸 다음에 기초 적심석(積心石·채움돌)을 3∼4단가량 쌓고는 육축 지대석을 놓아 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숭례문 육축 가운데 홍예(무지개 모양 통로)를 관통한 도로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결과 15∼16세기 조선전기 도로 위 100∼140㎝ 지점에서 17∼20세기 중·후기 도로면이 확인됨으로써 임진왜란을 지나면서 숭례문 일대 지표면이 1m 이상 상승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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