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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싸움소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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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25 19:38:12 수정 : 2010-05-25 19: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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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소의 지존 ‘범이’의 장례식이 그제 성대하게 치러졌다. 장례식에는 이종섭 의령군 부군수와 소싸움협회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몸무게가 900kg에 달하는 범이의 관은 초대형으로 특별 제작됐고, 관 뚜껑은 ‘무적신화 범이’라고 새긴 휘장과 국화 송이로 장식됐다. 운구는 ‘범이야 안녕’이라고 새겨진 만장과 우승기를 든 행렬이 앞장서고 트럭과 중장비까지 동원됐다. 무덤엔 비석까지 세워졌다.

웬만한 범인의 장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이만하면 ‘소 팔자 상팔자’다. 그러나 주인 하영효씨(67세)는 “범이가 내게 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범이는 전국대회 19연속 우승을 기록하면서 소싸움 애호가들로부터 ‘살아있는 전설’이란 찬사를 받던 싸움소다. 그 명성 때문에 이병철 전 삼성그룹회장, 씨름선수 이만기와 함께 경남 의령을 대표하는 ‘3걸’로 통한다. 싸움소로 선천적 체형을 가진 데다 물러서지 않는 강단까지 타고난 ‘범이’는 정액이 축산기술연구소에 보관돼 있을 정도다.

하씨는 2000년 범이와 인연을 맺은 후 온통 범이에만 정성을 쏟아왔다. 타이어 끌기와 산길 달리기 등 훈련을 하고, 하루 100㎏ 이상의 여물과 십전대보탕 등 특별 보양식을 만들어줬다. 연간 1500만원 이상의 관리비용이 들었지만 마다하지 않고 자식처럼 뒷바라지해왔다. 2002년 3대째 싸움소를 길러온 하씨에게 선대에서 누리지 못했던 전국대회 우승이란 영광을 안겨줬다. 그 후 지난해 은퇴하기 전까지 잇단 승리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줬으니 범이의 죽음은 진정 서글펐을 것이다.

3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독립영화 ‘워낭소리’. 40년을 함께한 소가 죽자 장사지낸 후 할머니가 “소 죽고 없어 서운하오”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소나 사람이나 똑같지 뭐”라고 했다. 소와 반평생을 함께한 늙은 농부의 애환이 녹아 있는 얘기다. 2007년엔 경북 상주에서도 꽃상여까지 동원된 소를 위한 장례식이 있었다. ‘의우총’이란 무덤이 조성됐다.

소도 이름을 남기는 시대가 됐다. 지방화 시대를 맞아 자랑거리로 삼기 위해 과대포장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동물을 향한 주인의 끈끈한 정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임국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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