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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원수 앞에 무릎을 꿇고 시체를 구걸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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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24 09:23:06 수정 : 2010-05-24 09: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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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는 파트로 파트로클로스의 시체 곁에 서서 말했다.

“파트로클로스, 결국 내가 그대를 죽게 했구나. 내가 그대의 원수를 철저히 갚았네. 그대를 죽인 원수는 내가 질질 끌고 다니다 저기에 처박아 두었네. 그러니 그대가 하데스의 집에 있더라도 내 말 들어보게. 자네 장례식 화장을 할 때 장작더미 곁에서 헥토르의 시체를 개들이 먹도록 하겠네.”

헥토르가 죽고 트로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신들의 나라 올림포스에서는 의견충돌이 일어났다. 그리스를 편들던 헤라, 아테나, 포세이돈 등은 내심 기쁨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면 트로이를 편들었던 신들은 불만으로 트로이의 위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 중 아프로디테가 한 마디 쏘아 붙였다.

"이렇게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오. 아무리 복수를 한다 해도 이미 죽은 시체를 저토록 욕보이는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입니다."

아프로디테의 말에 트로이를 편들었던 아레스는 물론 제우스도 불쾌한 기색을 나타냈다. 제우스는 이리스를 불러 지시했다.

"그대는 프리아모스 왕에게로 가게. 가서 많은 몸값을 가지고 가서 헥토르의 시체를 찾아오라 이르게. 두려워말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라고 하라."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이리스는 지체 없이 프리아모스에게로 달려갔다.

"프리아모스 왕이시여. 지금 많은 재물을 가지고 아킬레우스를 만나러 가게. 그대의 아들의 시체라도 찾아다 장례를 지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대 아들의 영혼이 하데스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스틱스 강 이편에서 헤메고 있다네. 그러니 두려워말고 시체를 돌려달라고 하게. 아킬레우스가 비록 난폭하기는 하지만, 실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네. 그대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 청원하면 그대를 예의바르게 대접할 것이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트로이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는 마차에 휘황찬란한 보물들, 트로이에서 최고의 것들을 가득 싣고서 전쟁터를 가로질러 그리스군 진영으로 갈 채비를 차렸다. 그렇게 트로이 성을 떠나 그리스군 진영으로 향했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막사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이때 마침 그리스 병사 차림을 한 늠름한 병사가 그의 앞에 나타나 친절하게 자신이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제우스의 명령으로 달려온 헤르메스였다.

프리아모스는 그리스 병사 차림을 한 헤르메스와 동행하여, 경비병들을 지나, 자기 아들을 죽이고 학대했던 아킬레우스 앞까지 무사히 이르렀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 했다.

"나는 그대가 죽인 헥토르의 아비되는 사람이오. 며칠 밤을 잠을 못 자고, 고민하다 이렇게 찾아왔소. 그대의 울분을 나 또한 이해하오. 하지만 아들을 앞세우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듯이 내 가슴은 너무 쓰리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소.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소. 헥토르는 이미 죽었소. 죽은 사람을 욕보이는 것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오. 아비된 도리로 시체라도 찾아다 장례라도 지낼 수 있게 해주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 앞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휘날리는 흰 수염이 애처롭게 보였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두 무릎을 꼭 부둥켜안으며 두 손에 입을 맞추었다. 프리아모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눈물이 아킬레우스의 손으로 무릎으로 떨어져 내렸다. 주변에 있던 그리스 병사들도 콧등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기억하시오, 아킬레우스 나와 거의 동갑인, 나처럼 아들 없이 비참해진 당신 아버지를. 하지만 내가 훨씬 더 가엾은 몸이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여태까지 한 적이 없는 일, 내 아들을 죽인 자에게 손을 내뻗었으니.”

프리아모스의 말에 분노로 이글거리던 아킬레우스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아킬레우스도 왠지 모를 슬픔이 북받쳐 올라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아킬레우스가 울먹이며 프리아모스를 부르며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왕이시여.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이제껏 당신처럼 바른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친구의 원수라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난 당신의 원수가 되었군요. 트로이 전체를 다스리는 왕께서 이렇게 제게 무릎을 꿇기까지 하시다니…."

서로 마주보는 두 사람의 눈에 이슬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조용히 프리아모스 왕의 품에 안겼다.

"따뜻한 아버지를 가졌던 헥토르가 부럽소. 당신은 진정한 왕이며 훌륭한 아버지시오."

살며시 아킬레우스는 노인을 일어나게 했다.

“여기 제 곁에 앉으십시오. 우리 슬픔은 우리 마음속에 가라앉힙시다. 불행은 인간 모두의 운명이지요. 하지만 용기를 냅시다.”

그리고는 아킬레우스는 하인들에게 헥토르의 시체를 씻고 기름을 바르게 하고서는 부드러운 옷으로 덮도록 부하들에게 명했다. 아킬레우스는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상할 대로 상한 헥토르의 시체를 가급적 프리아모스에게 보지 않도록 배려했다. 아킬레우스의 지시대로 헥토르의 시체는 최대한 흉측한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시체 수습이 마무리 되자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프리아모스 왕에게 인계했다. 프리아모스 왕은 감정을 억제하고 지긋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가 자기를 짜증나게 하면 자기 자신의 자제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두려웠다. 그는 프리아모스 왕에게 물었다.

“며칠 동안 장례식을 하고 싶으신지요? 그 동안은 제가 휴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킬레우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부하들에게 명하여 무사히 프리아모스 왕을 트로이 성까지 안내하도록 지시했다. 어두웠던 밤하늘은 더욱 어두워지더니 금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이끌고 트로이 성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트로이는 전에 없던 비통에 휩싸였다. 트로이 제일의 장수이며, 트로이를 이어갈 왕자의 죽음, 그리고 씻을 수 없는 트로이의 치욕,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트로이인들은 슬픔과 비탄에 잠겨 헥토르를 애도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헬레네도 눈물을 흘렸다. 이 비극을 초래한 것은 결국 자신의 탓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도 어려웠다.

헬레네는 울먹이며 헥토르에게 조의를 표했다.

“다른 트로이아인들은 날 꾸짖었지만, 언제나 당신의 다정한 마음과 다정한 말로 나를 위로해 주었지요. 당신만이 내 친구였어요.”

헥토르를 위한 애도는 9일 동안 계속 되었다. 애도기간이 끝나자 헥토르의 시체를 높다란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서 불을 지폈다. 검은 연기는 하늘을 행해 피어오르며 온통 하늘을 슬픔으로 수놓았다. 올림포스 산의 신들도 슬픔에 잠겨 있었다. 헥토르의 시체와 함께 모든 것이 타버리자 트로이인들은 술을 부어 불길을 끄고, 헥토르의 뼈를 추려 황금 항아리에 담았다. 그리고는 그 항아리를 연한 심홍색 천으로 감쌌다. 그들은 항아리를 움푹한 무덤 속에 놓고 큰 돌을 그 위에 쌓아올렸다. 그 유명한 말 조련사, 전차를 능수능란하게 몰아대던 헥토르는 트로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리스와의 일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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