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살때 ‘기독교 전파’ 죄명쓰고 지중해 밧모섬에 유배 당해
18개월 머물며 요한 계시록 기록…에베소 초대교회는 폐허로 변하고
그리스 아테네와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길 흔적을 뒤로한 채 광림교회 성지 순례단은 터키로 향하기에 앞서 그리스의 한 섬에 들렀다. 밧모섬(현재 지명 파트모스)이다. 아테네 인근 피레우스 항에서 여객선에 몸을 맡겼다. 여객선은 10시간 정도 출렁이는 파도 위를 달렸다. 칠흙 같이 캄캄한 망망대해 위에서 순례단의 일부는 귀에 익은 복음성가 실로암을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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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교회 성지 순례단원들이 요한계시동굴 내 요한의 기도터에서 김정석 목사가 인도하는 가운데 성경을 봉독하고 있다. |
배가 어느덧 스칼라 항에 도착하자 아침 햇살이 순례단을 반겼다. 밧모섬은 아테네 서쪽으로 250km, 터키 서해안 쿠사다시 항구에서는 동쪽으로 60km 떨어진 아름다운 섬이다.
수려한 외관과 달리 과거 로마 통치 시절 밧모섬은 중범자들의 유배지로 악명을 드날렸다. 해안 굴곡이 심한 밧모섬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등 기독교사의 한 장을 장식한 인물인 사도 요한이 머물렀던 곳이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도미티안 황제 때인 기원 후 95년 에베소에서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죄명을 쓰고 이 섬으로 유배온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요한계시록 1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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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비잔틴 시대 교회의 모습. 사데교회터인 이 곳은 웅대한 석주가 함께 한 아데미 신전 터에 견줘볼 때 매우 초라하게 보인다. |
2000년 전 요한의 모습을 그리며 섬 중앙의 고지대에 위치한 호라 마을로 향했다. 집들이 모두 흰색이라 에게해의 푸르른 물결과 눈부신 햇살에 노출된 흰집들을 유난히도 하얗게 보였다. 호라 마을 정상에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요한수도원이 위치하고 있다. 요한수도원을 바라보면서 먼저 에게해가 가깝게 보이는 흰 건물의 그리스정교회 교회당을 찾았다. 교회당 앞에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반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니 작은 동굴이 나왔다. 요한계시동굴이다. 동굴 입구 왼쪽에는 헬라어로 쓰여진 요한복음이, 오른쪽에는 요한계시록이 있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벽에 성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요한이 본 환상의 계시 그림이다. 이 성화에는 예수가 흰머리 가득한 노인으로 묘사돼 있다. 예수는 오른손에는 7개의 별을, 왼손에는 열쇠 2개를 쥐고 있었다. 7개의 별은 소아시아(터키) 초대교회 7곳을 보호하던 상징이고, 2개의 열쇠는 천국과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를 뜻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동굴 안 성화 옆 바위에는 연로한 요한이 눕고 일어설 때 손을 짚었다는 작은 홈이 있었다. 이 곳을 응시한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 등 순례단 일행은 역사적인 이 곳에서 통성기도의 끝을 “아멘”으로 몇차례 반복하면서 어둠 속에 있었던 요한의 심정을 헤아렸다.
어둠의 동굴을 나와 밧모섬을 지키는 요새처럼 보이는 요한수도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1088년 수도자 크로스토둘로스(헬라아로 ‘그리스도의 종’이란 뜻)가 세운 수도원 입구에는 요한의 모습이 선명하게 모자이크 돼 있어 성스러움을 더한다. 지금은 그리스정교회가 관장한다.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과 대리석 바닥 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가난, 순결, 겸손을 3대 미덕으로 삼는 수도사들이 머물고 있는 ‘겔리’라 불리는 숙소을 지나 수도원 박물관에 이르렀다. 박물관에는 5∼6세기 쓰여진 마가복음 원본 필사본이 보존돼 있다. 붉은 색 가죽 위에 쓰여진 마가복음이다. 에게해가 바로 보이는 곳에 흔적만 남아 있는 세례터를 들른 뒤 요한이 기원 후 97년 유배에서 풀려난 에베소(현재 지명 에페소스)로 향할 채비를 했다.
에베소는 사도 바울이 2차, 3차 전도 여행 당시 거쳐간 곳이다. 에베소는 밧모섬에서 110km 떨어진 터키 땅으로, 요한은 예수의 부탁에 따라 마리아를 모시고 이 곳에 와서 말년을 보냈다. 며칠동안 잔잔했던 바다가 거세졌다. 터키 쿠사다시 항으로 가는 배는 흔들었다. 놀이기구 바이킹를 탄 것 처럼 배가 전후좌우로 요동칠 때마다 순례단원들의 배멀미 고통이 심해졌다. 결국 배를 돌려 하루를 밧모섬에서 더 묵은 순례단은 2000년 전 작은 배를 타고 험난한 파도를 헤쳤던 사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일을 기약하는 기도를 했다. 전날 들이치던 파도는 어느덧 잠잠해졌다. 4시간 뱃길을 가는 동안 파도가 거센 것도 잔잔해진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라고 여긴 순례단은 쿠사다시에서 버스를 타고 에베소로 향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초대교회 7곳이 있는 곳이다. 헬라어로 에베소는 ‘인내’란 뜻을 갖고 있다. 7대교회는 현재 대부분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거대한 석주를 자랑하는 그리스 시대의 아데미 신전과 달리 사데교회터는 왜소함 그 자체였다. 이방의 땅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 만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빌라델비아 교회터로 향하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파트모스섬·에페소스(그리스·터키)=글·사진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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