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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층 노인 골라 등친 ‘할머니 사기단’

입력 : 2010-05-18 10:07:13 수정 : 2010-05-18 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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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팔아 하루 5000원 벌이 하는 노인에 400만원 사기…
3000원짜리 中약재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팔아
돈 없으면 대출받아 구입케 해… 200여명 피해
서울 구로시장에서 폐지를 주워 팔아 손에 쥐는 5000∼6000원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한모(72) 할머니. 나이 탓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으나 매일 폐지를 줍는 한 할머니에겐 지긋지긋한 관절염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러던 지난 1월 시장 한 구석에 사람이 몰려 있는 약초 좌판을 지나치게 됐다. 구경꾼 중 한 노인이 “내가 이 약 먹고 관절염이 싹 나았다”고 말했다.

다른 노인은 한술 더 떠 “내가 이 약을 얼마나 찾았는데, 돈 가져올 테니 아무한테도 팔지 말라”며 자리를 떴다. 약효가 있을지 반신반의하던 한 할머니에게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나랑 같이 이 약을 사자”며 꼬드겼다. 꾐에 넘어간 할머니는 근처 은행으로 가서 400만원을 대출받아 ‘보골지’라는 중국산 한약재 1200g을 샀다. 하지만 약효가 있기는커녕 몸만 더 나쁘게 하는 시가 3000원짜리 싸구려 약이었다. 수도권 일대에서 저소득층 노인들을 상대로 값싼 한약재를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 판 이른바 ‘노랭이식구파’라는 할머니 사기단에 당한 피해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7일 ‘노랭이식구파’ 천모(67·여)씨 등 4명을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이모(59·여)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의 범행을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180만원을 뜯은 혐의(공갈)로 오모(7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천씨 등은 지난해 2월부터 최근까지 수도권에서 한 할머니 등 노인 200여명을 상대로 값싼 약재를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아 3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같은 범죄를 저질러 수차례 검거됐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등을 받고 풀려나 계속 범행할 수 있었으며, 범죄를 통해 얻은 수입으로 본인과 가족 명의로 서울시내에 4층 빌딩과 중대형(40평대) 아파트 등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천씨가 시장이나 지하철역 등지에 범행 장소를 정하면 판매를 담당하는 주모(62·여)씨, 바람잡이 역할을 맡은 이모(72·여)씨 등이 지나가는 노인을 현혹해 물건을 사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약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노인에겐 이씨가 “이 약 먹고 아버지가 아픈데 다 나았다. 내 몫까지 사주면 나중에 돈을 주겠다”고 꾄 뒤 인근 은행으로 데려가 돈을 인출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은 주로 직업이 없거나 지하철에서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빈민층으로, 이 중 일부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에 속아 적금통장을 해지하거나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 약값을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골지는 발기부전과 양기회복에 쓰이는 약재로, 단독으로만 과다복용하면 급성간염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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