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북쪽 해안에 인접한 두 절벽 만세절벽과 자살절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절벽을 강타하는 바닷물은 시원해 보이고 푸른 초원은 아늑해 보인다. 바다와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촉촉하다. 역사적 사건의 배경지가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비애미를 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자연은 이미 역사와 연결돼 있었다. 만세절벽과 자살절벽은 이름 자체에 이미 비장미가 있다. 우리보다는 아무래도 일본 여행자들이 생각에 더 잠긴다. 온갖 상념에 빠진 이들이 측은하게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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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바라보는 만세절벽(왼쪽)과 밀림을 앞에 둔 자살절벽 모두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장소는 수백명이 목숨을 끊은 슬픔의 현장이기도 하다. |
만세절벽 뒤로 자살절벽이 보인다. 만세절벽에서는 차로 불과 5분 거리다. 자살절벽은 해발 249m 높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미군에 항복을 거부하며 일본인들이 자살을 택했다. 미 해병대가 공격을 감행하자 일본군과 그들의 가족이 푸른 삼림 속으로 대거 몸을 내던진 것. 만세절벽에서는 바다로 몸을 던졌다면 자살절벽에서는 정글로 몸을 던진 셈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의 상황으로 자신을 내몬 이들을 생각하며 일본 여행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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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용으로 끌려와 소중한 목숨을 잃은 한인들을 위로하는 한국인위령탑. |
개인적으로는 징용으로 끌려와 이곳에서 소식마저 끊긴 작은할아버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얼굴도 모르는 그분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인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5대양 6대주의 평화 기원을 상징하는 5각 6단의 탑이 한국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에서 숨진 이들의 넋은 한국을 찾았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현장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고개를 숙이는 태도가 고맙다.
사이판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만 반추해서야 되겠는가. 원주민의 이야기도 살펴야 하는 게 여행자의 자세다. 사이판도 다른 여러 나라처럼 질곡의 세월을 견뎌냈다. 차모로 원주민이 거주하던 섬에 스페인 탐험가 마젤란이 상륙한 때는 1521년. 그때부터 1899년까지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고, 이후 독일이 매입해 독일이 1914년까지 통치했다. 1914년부터 1944년까지는 일본이 머물렀고, 그 이후에는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 6만명으로 추산되는 작은 인구와는 달리 사이판이 겪어온 역사의 층위는 깊고 두꺼웠던 셈이다.
사이판=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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