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프랑스 구두 디자이너 로제 비비에르는 파리 시내에 자신의 구두가게를 열었다. 그가 만든 구두는 파격 그 자체였다. 검정·갈색·푸른색 일색이던 신발에 총천연색을 입히는가 하면, 플라스틱·셀로판 섬유 등 가능한 재료를 모두 사용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하이힐의 가느다란 뒷굽도 만들어졌다. 시간은 흘러 혁신적인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2007년 컬렉션에서 뒷굽이 없는 하이힐을 등장시켰다. 뒷굽이 수직으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앞꿈치 부분에 수평으로 붙어 있는 디자인이었다. 구두 굽은 이제 더 이상 구두 아래 붙어 지탱하는 부속품이 아니다. 화려한 색상·디자인, 다양한 크기·모양 등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패션의 완성이 구두라고 한다. 구두의 완성은 굽이 아닐까. 구두 굽을 들여다보자.
![]() |
◇구두 굽의 종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구두 굽 전문제작 업체들은 최신 유행에 맞춰 여러 가지 굽을 선보이고 있다. |
구두 굽은 크게 리프트와 힐로 구성돼 있다. 힐은 굽의 몸체 부분이다. 바닥 고무부분은 리프트 혹은 신발업계 용어로 ‘뎅까와’라고도 하며 흔히 구둣방에서 가는 보조굽을 말한다.
주로 구두 굽 전문업체가 큰 신발업체에 납품하게 된다. 신발업체의 구두 디자이너가 구두 콘셉트에 어울리는 구두 굽을 생각하면 구두 굽 전문가와 협의해 현실적인 굽을 만들어 낸다.
![]() |
◇발앞꿈치에 밑창을 댄 가보시힐이 인기를 끌고 있다. 키 커보이는 효과는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킬힐을 신을 수 있다. |
스파이크힐(스틸레토힐)은 가장 여성스럽고 섹시한 느낌을 준다. 두께가 가장 가는 굽으로, 킬힐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리프트가 작기 때문에 무게중심을 잘 잡아야 하며, 자주 굽을 교체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웨지힐은 옆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발바닥 안쪽의 아치 부분까지 막혀 있는 것이다. 여름철 샌들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굽이 높아도 구두 바닥 전체가 몸무게를 든든히 받혀 줘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뒤에서 볼 때 층층무늬가 있는 것은 스텍힐이다. 원래는 가죽을 켜켜이 쌓아 압축해 모양을 자른 것이지만, 요즘은 비슷한 무늬를 만들어 힐에 덧씌우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 앞발바닥 부분에 두툼하게 밑창을 댄 플랫폼힐(가보시힐), 루이힐과 비슷하지만 낮은 프렌치힐·더치힐, 일명 ‘통굽’으로 불리는 콘티넨탈힐 등이 있다.
![]() |
◇구두 굽의 전체 혹은 절반 정도 금속으로 장식한 구두는 세련된 멋이 난다.(위) ◇올 봄 인기 아이템인 플랫슈즈의 굽도 심심하지 않게 금속장식을 달았다.(아래) |
구두 굽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3년 전부터다. 10㎝를 넘어 20㎝까지 점점 높아지는 킬힐의 유행과 궤를 함께한다. 높이 경쟁에 한계가 있다 보니 구두 굽에 보석을 박아 넣거나, 두께를 다르게 하거나, 신발 메인 색과는 다른 재질·색상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시도됐다.
![]() |
◇발바닥 안쪽의 아치 부분이 막혀 있는 웨지힐은 굽높이에 상관없이 편하게 신을 수 있다.(위) ◇올해 초 호피무늬 인기가 뱀피로 이어지고 있다. 큐반힐·루이힐 등 다양한 굽에 뱀피를 입혀 포인트를 줬다.(가운데) ◇가죽을 켜켜이 쌓은 무늬의 스텍힐은 과거에는 갈색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색을 입힌 것도 나온다.(아래) |
올해는 금속으로 감싼 스파이크힐을 단 구두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업계 설명에 따르면 금속성 구두 굽은 봄보다는 여름철에 인기가 있다고 한다. 스텍힐과 웨지힐은 과거보다 색상이 다양해졌다.
올 봄에는 ‘보다 높은’ 구두를 ‘보다 편하게’ 신기 위한 고민 때문인지 가보시힐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가보시힐은 앞굽이 2∼3㎝를 보완해 주기 때문에 같은 10㎝ 힐이라도 8㎝ 구두를 신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앞굽을 구두 속에 숨기기도 하고, 아예 드러내 다른 색을 사용하거나 디자인을 변형하기도 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이 ‘뱀피’ 무늬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강렬한 느낌의 뱀피는 구두 전체에 사용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에 굽에 ‘포인트’를 주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테이션 뱀피 무늬가 많고, 고급스러운 애너콘다 가죽으로 감싼 굽도 등장했다.
‘최신유행’ 플랫슈즈의 굽도 예외는 아니다. 굽이 거의 없긴 하지만 굽 모양을 자세히 보면 두께와 색상이 다양하다. 하이힐처럼 굽 전체를 금속으로 감싼 굽도 눈에 띈다.
구두 굽 전문업체 ㈜용진산업·개발 이재일 대표는 “사람들이 스타일을 점점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는 그냥 까만 굽에 오래 신는 것이면 됐는데, 지금은 구두 굽까지 화려한 것으로 찾는다. 취향이 까다로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도움말:금강제화, 용진산업·개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