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관찰하고 따라하고 그들과 부대끼면서 느끼는 감정의 굴곡 담아

배두나 주연의 ‘공기인형’(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이러한 의문들에 관한 답을 어느 정도 제시하는 영화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된 공기인형이 인간을 관찰하고 따라하고 그들과 부대끼면서 갖는 감정의 굴곡을 담았다. 생명과 죽음, 외로움, 인간다움, 소통 등 존재와 관련한 온갖 화두를 던지는데 그 화법이 생경하지 않다. 만화처럼 직접적이고 수채화처럼 아름다우며 잠언서처럼 그윽하다.
이야기는 평이하고 매끄럽다. 섹스돌 노조미(배두나)는 어느 날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침실 밖 세상이 궁금해진 그녀는 주인(이타오 이쓰지) 몰래 외출을 시작하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따라하며 말과 행동을 배운다. 우연히 찾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점원 준이치(아라타)를 보고 사랑에 빠진 노조미. 낮 동안 그곳서 아르바이트하며 자신의 텅 빈 속을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감정들로 채워간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움을 궁금해하는 노조미의 눈에 들어온 현대인의 삶은 하나같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나이 어린 상사한테 매일 혼나는 주인, 세상과 담쌓은 거식증 환자,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오타쿠 청년, 살인사건에 집착하는 할머니, 공원 벤치서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 등 하나같이 고독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서로 대화는커녕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삶과 죽음(‘원더풀 라이프’), 가족(‘걸어도 걸어도’) 등 평범한 소재에서 묵직한 주제를 간결하게 풀어내기로 정평이 난 고레에다 감독은 인형과 인간, 주인과 준이치, 바람과 숨결 등 적절한 대비와 비유를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감정과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빈 곳에 타인을 채움으로써 완성되는 생명’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던진다. 본질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다움을 획득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준이치를 향한 노조미의 일방적 사랑이 파국을 맞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배두나 연기는 왜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가 외국인에게는 처음으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겼는지 납득이 될 정도로 빛난다.
인형과 인간의 중간에 선 존재의 낯섦과 떨림, 호기심, 환희가 커다란 눈망울과 조심스러운 손·발짓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의 맥락 안에서 감정의 흐름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잘 알고 있는 배우”라는 감독의 평가처럼 무표정의 발가벗겨진 인형에서 호기심으로 가득한 초짜인간, 사랑에 빠진 여성, 삶의 순리를 엿본 인간까지 복잡한 심리 변화를 적절하게 표현해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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