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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 동네의사를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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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4-08 00:55:15 수정 : 2010-04-08 00: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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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안 낫는다고 의사 자꾸 바꿔
3차병원 편애 정서 바뀌어야
엊그제 저녁부터 시작된 목감기 증상을 호소하는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온 엄마가 “어제 동네의원에 데리고 갔는데, 아직 열이 안 떨어져 오늘은 여기 데려 왔어요”라고 말한다. 얼굴 표정에 어제부터 여기로 데려 왔어야 했다는 불만이 가득하다.

선우성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교수 가정의학
또 수술 준비를 위해 일단 응급실로 가라는 말을 들은 40대 회사원 아저씨가 “급성맹장염 같다고요. 아니 어제 동네 의원에 갔을 때는 위염 같다고 약 지어 줬는데 무슨 의사가 맹장도 못 맞혀. 맹장도!”라며 소리지른다. ‘그 사람 의사 맞아?’에 해당하는 발언이다.

68세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어 보이는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어제 동네 의원에 가서 약 지어 먹었어요. 그런데 저녁부터 피부가 막 가려우면서 뭔가 빨갛게 나네요. 이거 약 부작용 맞지요. 왜 이런 약을 지어 주었을까요”라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 환자들이 내게 오게 된 동기는 내가 목감기나 급성맹장염이나 약물 부작용의 대가라서가 절대 아니고 대학병원에 근무하기 때문이거나, 날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들의 동네에서 처음 이 환자들을 보았다면 나의 판단이나 행동도 동네 의원 의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동네 의사들의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중학생 엄마처럼 성질 급한 우리나라 환자와 보호자를 최전방에서 봐야 한다는 점이요, 둘째는 아저씨의 경우처럼 전형적인 증상이 다 나타나기도 전에 너무 일찍 환자를 본다는 것이요, 셋째는 할머니처럼 치료도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하므로 부작용이나 치료 실패도 많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기, 중이염, 식중독처럼 증상 완화를 위한 약들을 쓰기는 하지만 일단 걸리면 어느 정도는 앓고 지나가야 하는 질환이 있다. 이런 질환에 대해 동네 의사를 믿지 못하고, 하루나 이틀 만에 상의도 없이 의사를 바꿔버리는 행태가 계속되면 의사들은 한꺼번에 증상이 다 좋아지도록 많은 약을 쓰게 될 것이요,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좀 더 센 약을 쓸 것이다. 과거는 물론 아직까지도 우리 개원가에서 감기에 주사를 사용하거나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것은 환자, 보호자들의 이런 경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질병 경과가 좋아지거나 차도가 없거나 일단은 같은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질병 중에는 급성 충수돌기염, 갑상선 기능항진증, 대상 포진처럼 처음에는 애매하다가 조금 지나면 확실한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이 있다. 처음에는 아무리 전문가라도 장담할 수 없지만 나중에는 의과대학생도 진단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처음 애매했던 시기에 진단 못했다고 그 의사를 탓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조금만 의심돼도 정밀검사하는 과잉진료를 유발하게 된다.

약물의 이상반응 중에는 약물 고유의 문제도 있지만 어떤 특정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은 복용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런 증상이 생겼어도 다른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처방한 의사에게 가 원인을 정확히 찾고 앞으로는 그 약물을 피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대처방법이다.

이외에도 3차 병원을 편애하는 국민정서, 검사와 약물 사용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건강보험 등은 동네의 진료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의사들에게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동네 의사로 지내기에 너무 어려움이 많아서, 후배들에게 이 길을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지만 우리를 믿고 따라주는 환자가 있는 한 이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계속할 것”이라고. 우리 국민이 동네 의사를 믿고 꾸준히 다시 찾아준다면 그들에게 큰 힘이 됨은 물론, 국내 1차진료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선우성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교수 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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