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냐 ‘장군’이냐. 이제까지 안중근 의사로 부르던 호칭을 최근 육군에서 안중근 장군으로 부르겠다고 함에 따라 논란이 뜨겁다. 찬성론자들은 “안 의사가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힌 데다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의 글을 쓴 바 있기에 장군 호칭이 온당하다”는 논리를 펴지만 반대 측에서는 “‘정식 군대’가 아닌 의병의 지휘관을 장군으로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고, 동양평화를 주창한 사상가로서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반대 논리도 거세다. 양측의 의견을 들어본다.
찬-거사 직후 ‘대한의군 참모중장’ 밝혀… 장군으로 불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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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
주지하다시피 안 의사는 거사 직후 “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다”라고 의연히 밝혔으며, 뤼순 법정에서도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전쟁 중에 적장을 사살했노라”고 당당히 외쳤다. 사형 집행 전날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귀한 글을 남길 정도로 그는 자신이 군인임을 힘주어 강조했다. 그러나 광복된 조국은 그를 군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바로 일본군 출신 친일세력이 온통 군을 장악해 국군 속에 민족의식이 싹틀 수 없도록 항일독립전쟁의 자랑스러운 국군의 역사를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군은 잊혀져 가는 ‘군인 안중근’을 장군으로 받들어 제자리에 모시려 하고 있다. 육군본부 내의 지휘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명명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명칭 결정만의 조치가 아니다. 항일독립 전쟁으로부터 국군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역사적인 원려가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는 ‘장군’ 이미지가 바람직하게 형성되지 못한 면이 많다. 때문에 더욱 안 의사를 장군으로 모셔서 모든 장군이 본받고 지향해야 할 모본으로 삼아야 한다. 안중근 장군을 정신적 지주로 그의 숭고한 평화사상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계승함으로써 우리 군이 진정한 강군으로 육성되기를 기대한다.
찬-민간인 신분으로 이토 제거 역사적 평가 빈약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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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일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대표 |
의사라는 것과 장군이라는 호칭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특히 국제법상 안중근의 하얼빈 작전을 보는 해석이 크게 달라진다. 장군이란 용어가 국제적이라는 것에는 100년 전 안중근의 하얼빈 투쟁을 국제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100년 전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한 안중근 재판 성격을 규정하는 데도 의사와 장군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안중근에 의해 숨진 이토가 일본의 영웅으로 일본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영웅과 일본의 영웅이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안중근의 호칭이 장군으로 통하는 날 이 모든 것이 한번에 해결된다. 안중근은 일제 법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군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포로로 대접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일제 법정은 그 같은 주장을 묵살했다. 안중근을 장군이라고 호칭하자고 하는 것은 100년 전 안중근의 주장을 이제라도 수용하자는 것이다.
반-군인 아닌 의병 신분 역사적으로도 합당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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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
우선 안중근은 군인이 된 일이 없다. 그는 의병이었다. 연해주 의병부대에서 우영장으로 활동하며 일본군과 전투한 일도 있다. 의병은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군을 일컫고, 그 지휘자는 의병장이라고 했다. 의병장을 장군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의 직속상관이었던 유인석은 국내에서 의병대장이었고, 연해주에서도 13도 의군의 최고책임자인 도총재였다. 그렇다고 유인석을 장군이라고 하지 않는다. 안중근을 장군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논리대로라면, 유인석은 대원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의거의 성격으로 보아도 ‘장군’이란 칭호는 적당치 않다. 이토를 처단한 것은 군인이 전투에서 적장을 사살한 것이 아니다. 이토는 한국을 침략하면서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중근은 그것이 허구임을 간파했고, 이토의 주장은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때문에 이토를 처단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동양의 참평화를 위해 옥중에서 직접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고자 했다. 안중근의 의거는 약소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짓밟는 제국주의에 맞서 이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투쟁이었다. 안중근을 기리자고 하면서 오히려 폄훼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반-역사용어의 역사성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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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운용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 |
먼저 역사용어는 어떠한 세력의 필요에 의해 마음대로 부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사용어는 그 역사적 진실을 추구했던 사람들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종합적 인식이자 평가이고, 이 자체가 또한 역사이다. 국내에서 그에게 의사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부여한 것은 ‘대한매일신보’이다. 일제의 탄압이 상존하던 시대에 일제 스스로 일본 근대국가의 아버지로 평가하는 이토를 처단한 그에게 ‘의사’라는 칭호를 부여한 것 그 자체가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의 확립이라는 안 의사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안중근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를 본격적으로 한 박은식을 비롯해 이건창, 이건승, 김하구, 계봉우, 황의돈 등이 안중근 전기를 썼는데 거의 장군이라고 호칭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안 의사를 군인으로만 평가하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그는 당시 제국주의시대를 평화라는 무기를 갖고 새로운 ‘도덕의 시대’로 만들려고 한 사상가였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중국인은 인도(人道)철학을 격변시킨 인물로 평가했고, 심지어 그를 ‘의사’로 평가한 일본인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안중근 장군이라는 호칭은 역사용어의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왜곡’이다.
정리=황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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