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자리 지키기 올인해야 미국에서 인구 280만가량인 조그만 아칸소주에서 ‘소년 주지사’로 불렸던 빌 클린턴이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내건 구호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였다. 당시 선거 초반에는 클린턴이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를 물리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냉전의 끝자락에 치른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부시는 안보 대통령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심을 움직인 것은 안보가 아니라 경제였다. 미국은 1990년 7월부터 1991년 3월까지 혹독한 경기 침체기를 겪었고, 그 이듬해에 대선이 실시됐기 때문이다.
![]() |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
미국은 2007년 12월부터 경기 침체기에 빠져 있었고, 대선도 그 와중에 치러졌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2009년 7월에 경기 침체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극심한 경기 침체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9.7%에 달하는 실업률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에서는 이제 “문제는 일자리야, 바보야”라는 얘기가 국민 정서를 파고들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의 안경률, 이군현, 정옥임 의원이 미국을 방문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 의회에서 언제쯤 비준될 수 있을지 알아보았다. 한나라당 대표단을 만난 텍사스주 출신의 공화당 피트 세션스 의원은 “올해에는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 11월에 미국에서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미국 노동계는 한미 FTA를 체결하면 미국인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이에 반대한다.
미국과 중국이 일전불사의 전의를 다지고 있는 중국 위안화 환율 조정 문제도 결국 일자리 지키기 싸움에 다름 아니다. 미국 측은 중국이 인위적인 환율 조작으로 미국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 국내적으로 최대 쟁점인 건강보험 개혁안도 일자리와 무관치 않다. 전국민 보험을 실시하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남으로써 결국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는 반대 논리가 일반 국민의 마음을 흔들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고실업 사태가 장기화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고용 없는 성장’ 모델 국가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의 시사 전문지 ‘월간 애틀랜틱’ 최신호는 “약 10%대의 실업률이 2010∼2014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단순한 실업이 아니라 불안정 고용까지 고려하면 미국의 실질 실업률이 17.4%에 달한다고 이 월간지가 지적했다.
고실업 사태가 오래 지속되면 사회 병리 현상이 만연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직한 가장은 아내와 자녀를 구타하는 등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다고 한다. 최근 미국 민간 기관에 가정 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경기 침체기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하기도 쉽지 않아 일시적으로 이혼율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것도 일시적인 현상일 뿐 곧 이혼율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고실업 사태 속에서는 결혼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혼외 출산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고졸 이하 학력 여성 출산의 50% 이상이 혼외 출산이다. 결국 전통적인 가정이 급격하게 깨지고, 범죄와 정신 질환, 마약 복용 등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문제는 일자리가 아닐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자리 만들기에 ‘올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미 의회에서 민주, 공화 양당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도 일자리 창출 지원 법안만큼은 초당적으로 통과시켰다.
한국이 안고 있는 고용 문제가 미국보다 덜 심각한 게 결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와 한국의 정치권은 일자리 지키기에 ‘올인’해야 한다. 세종시 문제, 4대강 사업 등 모든 국정 현안을 처리하면서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맨 먼저 따져 보아야 한다. 정치란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과 미국에서 최고 가치는 일자리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