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비 오는 날의 등산

관련이슈 세상 이야기

입력 : 2010-02-16 15:12:39 수정 : 2010-02-16 15:12:39

인쇄 메일 url 공유 - +

 

등산 약속한 날 비가 와 취소하려니 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모인다고 하니 우산을 들고 어슬렁거리며 약속 장소에 갔다.

친구들 열명 정도 모여서 우산을 들고 아차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뚱뚱한 나는 좀 걷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나 아차산은 가장 낮은 산중 하나이고 이 산이 힘들다면 다른 산은 생각지도 말아야 한댄다. 어쨌거나 헉헉 거리고 뒤쳐지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비는 오다 말다 한다. 산은 정말 공기가 좋았다. 우리 일행 말고도 다른 일행이 삼삼오오 어울려 올라간다. 등산복이 마치 제복 같다. 한국엔 누구나 등산복이 정장처럼 한 벌 씩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산행이라 나야말로 잠바도 신발도 언니한테 얻어서 마련했다. 당장 사는 것도 마음에 드는 것은 값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그럭저럭 얻어 입고 얻어 신고 하다가 나중에 좋은 것으로 장만 해야겠다. 경제가 어려워져 살기 힘들어졌다 해도 등산객들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국민 모습이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은 말이 생각 난다. 북한 사람들은 일을 좋아하고 남한 사람들은 노는 걸 좋아 한다고. 그래서 북한 출신들은 돈이 많고 잘 살며, 남한 출신들은 돈이 없어도 노는 건 잘한다고. 그것은 곧 남한은 풍류민족으로, 일하는 민족이 아니란 것이다. 풍류 민족, 나무 아래 정자에 앉아 장기를 두고 시를 읊으며 삿갓을 쓰고 앉아 있는 신선들을 연상케 한다.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노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에게는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일하는 민족과 노는 민족이 어찌 태어날 때부터 정해 지는가. 그러나 남한 출신인 내겐 그리 기분 얹짢을 것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 실업자가 수백 만 명이 되도 노는 건 일등이란 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일만 하는 것도 안 좋지만 놀기만 하는 것도 안 좋다. 그저 농담으로 백수가 왜이리 바쁘냐고들 한다. 실상 백수가 제일 바쁘다는 것이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농담도 있으니 그저 시간나면 말없는 산에 가서 메아리를 쳐보고 속세에 지친 심신을 달래보기도 한다. 그러면 시원하다. 몸이 건강해지면 마음도 건강해 진다. 산 보다 더 좋은 명약은 없을 듯 하다.

미국에 있을 때 너무도 부러워하던 산행이다. 그래서 처음 가는 나를 배려해 두어 시간 후 하산하고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 갔다. 여기가 또 재미있었다. 다 찌그러진 냄비에 김치찌개를 내어온다. 찌개 속엔 돼지갈비가 들어 있고 돼지갈비를 가위로 자르고 나누어 먹는다.

옛 것을 그리워 하는 산악인들이 미리 옛날 양은냄비에 찌개 만들어 주는 식당에 예약을 한 것 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예쁜 냄비도 많고 예쁜 그릇도 많건만 애써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원하는 것은 모두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이다.

근심 걱정 없던 시절 먹던 양은그릇. 어린 시절 세상 근심 걱정은 우리 부모님들 차지였고 우리들은 그저 잘 먹고 잘 크고 공부만 하면 '땡'이었다. 세상의 걱정은 우리들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식사 후 서로 식사비를 낸다고 난리다. 이런 풍경 또한 우리나라에서만 보는 진풍경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내가 먹은 식사비는 내가 내면 그만이고 다른 사람은 그들이 각자 내면 그만이다. 서로 부담없고 뒤끝도 깨끗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아닌 것이다. 누군가 지갑 사정이 넉넉한 분이 식사비를 내면 아주 기분 흐믓해 한다.

그게 사람 사는 맛이다. 개인주의가 팽창하는 선진국보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러나 돈이 좀 빡빡한 분들은 지갑 열기가 좀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낼만한 분이 내면 다같이 마음 편하다. 그러면 다음달엔 내가 낸다. 그 다음달은 내가 하며 서로 식사비 낼 것을 미리 주문 한다. 얻어먹기 좋아하는 얌체들은 이런 모임에선 아주 속으로 좋을 것이다.

열명쯤 되니 언젠가는 나도 한번 내야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날씨가 따듯해지면 김밥을 만들어 오고 산꼭대기에서 먹기로 했다.

고국에서 첫 번째 산행은 이렇게 즐겁게 보냈다. 다음달에 또 간다 하니 기다려진다. 바야흐르 조국으로 귀향은 중년의 천국생활에 접어든 듯 행복하다. 가는데 마다 반겨주는 선배님들 그리고 동료들과 더불어 중년의 행복한 고개를 넘어 가는 듯 하다.

이제 마음 속으로 원하는 긍정 마인드를 쏘아 올린다. 아이들이 축복된 인생을 걸어 줄 것을 당부하며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살아 줄 것을 기대해본다. 금년엔 꼭 손주도 안아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유노숙 yns50@segye.com  블로그 http://yns50.blogspot.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주빈 '신비로운 매력'
  • 이주빈 '신비로운 매력'
  • 한지민 '빛나는 여신'
  • 채수빈 '여신 미모'
  • 아일릿 원희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