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속에서도 한국영화 시각효과가 성공을 거둔 것은 최선 다한 그들의 열정덕분" 올해 영화산업의 특징 중 하나는 시각효과(VFX)를 앞세운 영화들의 성공이다. 한국 극장가 박스오피스 1∼5위를 모두 영화 ‘해운대’(1131만명)와 ‘국가대표’(837만명)를 비롯해 ‘트랜스포머2’와 ‘터미네이터4’, ‘2012’ 등 화려한 볼거리가 즐비한 영화들이 차지했다. 17일 개봉한 ‘아바타’ 역시 첫주에만 160여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10여년 전만 해도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활용됐던 VFX가 이제는 영화 완성도와 흥행을 위한 절대요소로 자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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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모팩의 장성호 대표는 “한국 CG 전문가들의 기술력과 창의력을 믿기에 수년 내 물량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준 높은 한국형 SF 영화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한다. 송원영 기자 |
#1. 한국 영화 CG 발전사와 함께한 모팩 16년
장성호 대표는 “처음 영화일을 할 때는 개봉작 100편 중 1, 2편만이 CG를 사용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됐다”는 말로 그간의 변화를 갈음했다.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싶어 선택한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재학시절. CF프로덕션 아르바이트로 이름을 알리던 그는 1994년 말 운명처럼 ‘귀천도’의 그래픽디자이너로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CG와 DI(디지털 색보정) 등 시각효과 용어마저도 낯설던 때라 영화판에서 ‘CG 슈퍼바이저’로서 존재가치는 물론 최소한의 수입조차 기대하기 힘들었다. 1년 가까이 진력을 했지만 디자인회사 사장은 월급도 안 주고 도망가 버렸다. 그는 “어찌 보면 그때의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조건이 새옹지마가 된 셈”이라며 “남은 직원들을 수습해 설립한 조그마한 회사가 지금은 50여명의 아티스트가 몸담고 있는 CG 전문업체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물론 오늘날 국내 최대·최고 CG업체로서 모팩이 누리는 영광은 절로 이뤄진 건 아니다. 모팩은 숱한 기회비용과 시행착오를 겪었고 장 대표 자신도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일러스트레이션과 같은 가욋일을 해야 했다. ‘해운대’의 물 CG를 구현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제대로 침대에 몸을 누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태왕사신기’ 때는 CG 4800컷을 1년6개월 새에 완성하는 진기록을 세울 정도로 작업 조건은 열악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겪는 것만 같았던 지난 15년 세월은 그의 머릿속에는 추억과 보람으로만 기억된다.
“전체 2000컷 중 1800컷이 CG인 ‘화산고’는 당시 DI(촬영한 필름을 컴퓨터에 집어넣고 스캐닝으로 화면의 질감과 톤을 균일하게 맞추는 작업)를 전면에 내세운 획기적인 작품이었죠. 흑백사진 속의 네 캐릭터가 차례차례 등장하면서 영화의 내용을 함축하는 ‘공동경비구역 JSA’ 마지막 1분26초 영상은 지금 봐도 감개무량하고, ‘빙우’와 ‘역도산’ 역시 매트페인팅(화면에서 특정 대상을 지우거나 집어넣는 기법)이란 한국 CG의 비교우위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었다고 자평합니다. 또 (그간 알려진 것과 달리 한스 울릭의 폴리건엔터테인먼트보다 모팩이 대부분의 CG를 담당한) ‘해운대’는 우리의 기술력과 프로세스만으로도 그만한 수준의 볼거리를 만들었다는 데 그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2. 영화의 완성도는 기술력과 예술적 창조성의 조화
장 대표는 ‘아바타’ 개봉 전후 직원들과 함께 수차례 영화를 보며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선보인 CG 기술을 분석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과 아바타 등 ‘디지털 액터’의 감정표현 수준이 너무 매끄러웠고, 1페타바이트(100만 기가바이트)라는 엄청난 데이터량을 효과적으로 제어한 제작진의 기술이 놀라웠다. “그만큼의 제작비와 시간 등 여건이 보장된다면 우리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2012’ 때 자신감이 무색해질 정도로 ‘아바타’의 프로세스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분명 충격이었지만 절망 수준까진 아니다”고 단언한다.
“‘아바타’가 놀라운 것은 CG가 영화에서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선보였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CG 기법은 ‘콜럼버스의 달걀’과 비슷합니다. 처음 창조하기는 힘들지만 따라가기는 쉽습니다. 우리에겐 할리우드가 선보인 CG 기술의 80% 정도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숙련된 아티스트들이 존재합니다. 기술력으로만 따지면 할리우드와 뉴질랜드, 호주, 프랑스, 영국 그리고 한국입니다. ‘포비든 킹덤’과 ‘전사의 길’ 등 우리 업체가 최근 잇따라 할리우드 영화 CG를 맡게 되는 이유죠.”
하지만 장 대표는 ‘낮은 단가와 짧은 작업시간’만이 한국 CG의 유일한 경쟁력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몇 개의 상위 업체가 6000억달러 규모의 세계 문화콘텐츠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것처럼 CG는 단순히 기술력만으로는 그 의미와 가치를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면서 “할리우드의 물량과 숫자를 따라가기보다는 한국의 CG만이 표현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바타’처럼 물량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면 ‘괴물’이나 ‘디스트릭트9’처럼 작품의 완성도와 CG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영화 기획단계에서부터의 시각효과 전문가의 참여, 각 CG 전문업체 간 공동작업, 산학협동 등이 그 방법론이 될 수 있겠다고 귀띔한 장 대표. 그는 “한국 시각효과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면 이는 열악한 지원과 투자에도 열정과 최선을 다한 아티스트들 덕분”이라며 “이들의 기술력과 노력, 창조적인 측면에서의 잠재력이 있기에 한국 영화계에서도 수년 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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