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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40> ‘생문학자’를 꿈꾸는 장대익 동덕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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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2-15 00:53:17 수정 : 2009-12-15 00: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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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교수와 '통섭' 번역·출간
이땅에 '통섭의 시대'를 열어 '종의 기원' 다윈 연구 권위자
"연구없는 소통은 공허하고 소통없는 연구는 맹목일뿐 학문연구 경계를 허물어야"
카이스트 연구원, 서울대 융합기술연구원, 한국예술종합학교 통섭실험실, 이화여대 통섭원….

통섭(統攝·Consilience)이 대세다. 학계의 울타리는 넘어선 지 오래다. 산업계의 반응도 뜨겁다. 통섭을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가치로 선포한 회사도 있다. 국어 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이 땅에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 통섭은 이제 특정 행동을 끊임없이 모방하는 ‘밈(mime) 현상’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논란이 많다. ‘생물학 패권주의’ 혹은 ‘환원주의 개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장대익 교수는 “연구 없는 소통은 공허하고, 소통 없는 연구는 맹목이다”며 “지식인이 대중과 적극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학자의 제3의 길’이라고 규정한다. 자기 학문에 빠져들지 말고 다양한 글쓰기로 학자들이 소속한 사회에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학자들에게 지원되는 각종 연구기금이 사실상 세금이니 그만큼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실 안쪽 문 앞에서 그가 카메라 앵글에 들어왔다.
송원영 기자
그래서다. 이 땅에 통섭의 시대를 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대익 교수를 만났다. 장 교수를 만나는 의미는 또 있다.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 발표 150주년인 2009년을 마무리하는 때여서다. 마침 그는 ‘종의 기원’을 저술한 찰스 로버트 다윈에 관한 권위자이기도 하다.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캠퍼스를 찾았다. 캠퍼스까지 오르막길을 오르고, 학교에서 제일 뒤쪽이라는 인문관 연구실에 들어섰다. 장 교수는 기자의 도착을 반기려고 겨울 날씨에도 문을 열어놓았다. 불혹의 나이를 며칠 앞둔 그가 환하게 웃는다. 먼저, 다윈 전문가에게 다윈 관련 행사로 가득했던 2009년을 보내는 심정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윈은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습니다. 다윈의 3부작 중에서 ‘종의 기원’만 국내에서 번역출간되지 않았어요. 다윈의 종의 기원은 초판부터 6판까지 있는데, 초판이 다윈의 생각을 가장 잘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지만, 지금 초판을 번역하고 있어요.”

그는 1998년 미국에서 출간된 ‘통섭’을 2005년 국내에서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번역출간했다. 원저의 제목(Consilience)을 놓고, 역자들은 숱한 토론과 고민 후 ‘통섭’을 번역어로 삼았다.

“통섭은 학문의 큰 줄기(統)를 잡다(攝)는 뜻으로, 그 개념은 불교 용어의 현대적 변용인 셈이지요. 통섭은 이제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일상어가 됐어요. 통섭은 우리 사회에서 통합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방아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재천 교수라는 지식인의 공로가 컸지요. 대중과 학계, 산업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그분이 통섭을 널리 알린 것입니다. 이를테면 ‘밈’의 가장 충실한 운반자였던 셈입니다.”

명쾌한 설명이다. 그리고 겸손한 설명이기도 하다. 젊은 학자 장대익도 실은 통섭 분위기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통섭 길들이기 방법론을 제시해서다. 그의 공헌이 있었기에 홍성욱 서울대 교수의 하이브리드,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의 노마드,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수렴, 이어령 박사의 디지로그 등 유사 개념보다 통섭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제는 분야 싸움을 할 때가 아닙니다. 매일 쏟아지는 과학기술의 성과에 눈을 감고 자신의 분야만을 고집해서야 되겠습니까. 통섭의 정신을 발휘하려면, ‘분야 중심’에서 ‘질문 중심’과 ‘주제 중심’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그렇다. 이제는 타당한 질문에 명확한 설명을 하는 경쟁의 시대다. 인간에 대한 질문에 설명과 대답이 가장 그럴듯한 연구가 지지받는 시대다. 그는 이를 ‘지식의 자유 경쟁시대’라고 설명한다. “질문은 독점하면서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며 일부 지식인의 잘못된 태도를 비판한다.

‘생문학자’, 즉 인문학을 하는 생물학자를 꿈꾸는 그의 비판과 자성은 이어진다. “국내 실정은 아쉬운 대목이 많지요. 심리학·경제학·철학·생물학 등의 전공 분야는 원래 있었던 구획이 아니잖아요. 연구 효율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칸막이일 뿐…. 통섭을 하기 위해서는 인접 학문과 통합보다는 ‘질문의 공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심리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과 대니얼 카너먼 같은 학자가 우리 사회에서도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학자로서 기득권보다는 사회적인 의무를 강조하는 그의 말들이 신선하다. 젊어서 가능한 이야기일까. 아니다. 경험과 신념, 실력이 바탕이 돼서 가능한 말일 것이다.

카이스트에서 로봇공학을 공부하던 대학생 장대익이 인문학 갈증을 느낀 때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접하면서였다. 과학과 인문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대 대학원 협동과정에 입학했다. 철학에 빠져들 무렵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 “공부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타전공 학생을 연구실 팀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시절 최재천 교수는 흔쾌히 그를 팀원으로 받아들였다. 연구실의 ‘방장’에게 최재천 교수가 지시를 내렸다. “장 선생에게 방 하나 내어 주지.” 그게 과학철학을 공부하던 대학원생 장대익이 본격적으로 생물학에도 인연의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됐다. 배우려는 제자나 받아들인 교수나 지식융합적인 사고방식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제안이었고, 승낙이었다. 당시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 오늘 한국의 지식융합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실질적인 탐구를 위한 그의 지적 외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장 교수는 일본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에서 인간과 영장류에 대해 연구하며 지적 열망을 채워나갔다. 그런가 하면 영국 정경대(LSE) 과학철학센터 교환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진화론의 본부 중대’에 들어가 핵심이론과 최신 흐름을 접한 것이다. 2006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보스턴의 터프츠대 인지연구소에서 보낸 시간도 의미 깊었다. 대니얼 데닛,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 등 세계적인 석학을 접할 수 있었다. 대가가 노닐던 곳에서 그는 가파르게 성장했을 것이다.

“책에서나 접하던 대가들을 만났으니, 더욱 열심히 공부했지요. ‘통합의 물’에서 이론적 토대를 다지고, 현장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진화철학자, 진화심리학자, 진화언어학자 등이 모인 곳에서 연구에 매진했던 장 교수는 ‘경계’에 관심이 많다. 그 경계는 동물행동학·진화생물학·기계공학 등의 이름을 갖게 된다. 그러나 “본질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강조한다.

“동물·기계·인간·신에 대한 관심이 크지요. 그리고 이들 사이의 맥락과 연결 고리를 밝히고 싶습니다. 경계에 관심을 두고, 종교를 인간의 현상으로 풀어내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심은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예전에는 철학자들이 하던 질문이었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질문이지요. 저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고요.”

대중이 좋아하는 젊은 학자에게 물었다. 제자들에게 권하는 공부 방법은 없을까. “지식의 세계를 넘나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학부 시절은 물론 대학원 다닐 때도 관심 있는 학부 강의를 청강했어요. 외국에서 공부할 때도 교수들이 시범 강의하면 쫓아가 들었어요. 우리는 그런 문화가 약하지만, 외국에서는 교수들도 다른 교수의 강의를 듣고 세미나에 적극 참여합니다. 학과의 교수는 물론 다른 과의 교수들도 다수 참여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해요. 강의하는 교수도 고마워하는 문화가 뿌리내렸지요. 미국만 하더라도 이는 학계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영역을 넘나드는 공부는 즐거운 과정인 셈이다. 이런 문화가 뿌리를 내리면, 자연히 통섭과 지식융합의 깊이도 깊어지게 될 것이다.

bali@segye.com

■장대익 교수는…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1971년 대전 출생. 카이스트 졸업. 서울대 대학원 과학사 및 협동과정 졸업. 통섭은 구호가 아니라 생활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통섭 2.0’과 ‘지식융합 2.0’의 시대를 추구한다. 지식의 소통에도 관심이 많아 국내 한 출판사에서 ‘지식인마을 시리즈’를 기획했다. 젊은 학자들과 함께 시리즈를 내고 있다.

●역·저서

‘다윈의 식탁’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쿤 & 포퍼’ ‘진화론도 진화한다: 다윈 & 페일리’ ‘통섭’(공역) ‘종교 전쟁’(공저) ‘과학으로 생각한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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