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도굴도 60년대부터 기승을 부렸다. 94년에는 경북 영풍의 고려 순흥벽화 고분과 경남 합천의 가야고분 3기가 도굴범에 의해 피해를 봤고 97년엔 경주 진덕여왕릉이, 98년엔 경주 금척리고분과 구미 인동고분이 파헤쳐졌다. 2000년엔 경주시 강동면의 신라 고분 50여기가 통째로 도굴되는 충격적인 사건까지 벌어졌다. 근래엔 명문가 족보를 입수하거나 풍수지리 지식을 활용, 숨겨진 고분마저도 찾아내 도굴에 나선다니 끔찍한 일이다.
경북 영주 일대에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무려 1000여개가 밀집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한에선 유일하게 고구려계 벽화 고분을 포함하는 등 삼국시대의 세력관계나 생활양식을 보여줄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하지만 이 고분군의 무려 99%가량이 도굴을 당했다고 한다. 껍데기만 남은 채 방치된 것이다. 재정 자립도가 고작 20%에 불과한 영주시로서는 엄청난 발굴 및 관리비용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지정문화재가 아니어서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 전북 정읍 일대에 산재한 백제고분의 훼손 실태도 유사하다.
지난해 2월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소실되면서 문화재 관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많은 국민들이 숭례문을 찾아 문화재 관리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숱한 애국적 대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열정이 지금도 국민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반짝 관심에 불과하다면 문화국민으로서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예산 타령 속 책임 회피에 급급한 게 문화재 관리의 현주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문화재에 녹아 있는 조상의 정신문화와 전통은 우리의 자긍심이자 보존해야 할 자료다. 이를 도굴해 잇속을 차리려는 행위나 방치하는 당국 모두 역사의 죄인이다. 뼈저린 자성이 있어야겠다.
임국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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