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속내 리얼리티쇼처럼 담아내
이혼 이야기 나올 땐 눈물 보이기도
“여배우들 별종으로 보지 않았으면” 영화 속 대사가 금세 연예뉴스로 둔갑한다. 2009년 한국을 살아가는 대표 여배우들의 삶과 생각을 리얼리티쇼처럼 담아낸 ‘여배우들’(감독 이재용) 때문이다.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은 실명으로 이 영화에 출연해 시상식 드레스에서 성형, 연애, 이혼, 인기, 서열 등에 관한 그들의 속내와 맨얼굴을 거침없이 까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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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 |
최소한의 얼개와 상황만 설정하고 대부분 에피소드와 대사는 배우들의 논의와 애드리브에 의존했다는 이 영화에서 고현정은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이 실제 판박이까진 아니더라도 아예 없는 부분을 만들어 내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큰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나 주위 시선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한 털털한 성격 등이 그것이다. 특히 17년 전 TV드라마 ‘여자의 방’에서 처음 연기호흡을 맞췄던 윤여정, 이미숙 선배를 오랜만에 만나 셋의 공통점인 이혼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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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은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게 가끔은 불편하고 속상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좋은 점과 행복한 순간이 그보다 훨씬 많은 복 받은 직업”이라고 말한다. 송원영 기자 |
고현정은 극중에서 솔직, 담백, 털털하고 ‘욱’할 때도 있어 우아한 모습보다는 ‘망가질’ 때가 더 많은 여배우로 나온다. 잘나가는 후배를 대놓고 갈궈 ‘또라이’, ‘미친년’ 소리까지 듣고, 말이 많다는 이미숙의 지적에 “이혼 전에는 안 그랬어요. 이혼하고 그래요”라고 응수한다.
화보 촬영장에 ‘소속사 막내’라며 젊은 꽃미남을 데려온다는 설정이 여배우로선 꽤 부담스러웠을 법도 한데, 되레 화보 촬영장에 오기 직전 현정의 집에 연하 애인이 트렁크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장면을 넣자고 제안한 적도 있단다.
“제가 워낙 착해서 그래요.(웃음) 사실 여배우가 여섯인데 저만 왜 그런 역할을 맡고 싶겠어요? 근데 여배우들이 영화에서 하나같이 우아하고 근사하게만 있으면 재미없잖아요? ‘여배우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견제와 신경전도 있지 않나’란 감독 말에 다들 주저하는 분위기였는데 감독과 오랫동안 봐온―고현정의 매니저는 2003년 이혼 뒤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고현정에게 ‘그래도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주목을 받았던 이재용 감독을 소개했다고 한다―처지다 보니 제가 지우를 갈구는 역할로 나오게 된 거죠.”
고현정은 이번 영화를 통해 평소 좋아하는 ‘프로’들과 함께 작업해 행복했고 새삼 여배우의 위치를 돌아볼 수 있어 값졌다고 했다. 그는 “다들 프로여서 그런지 정말 각자가 맡은 포지션에 걸맞게 적당한 수준에서 적절히 연기하더라”면서 “조금 넘치거나 모자라는 부분은 이미숙 선배가 깔끔하게 정리해줬다”고 귀띔했다. “여배우들은 24시간 바쁜 척해야 돼”란 대사에는 절대 공감했고, 이 영화가 “여배우들이 그렇게 별종은 아니다”라는 팬들의 긍정적인 시각 변화에 보탬이 될 것 같아 뿌듯함도 느낀다.
고현정은 미실을 통해 고현정 연기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평을 듣는 “‘선덕여왕’은 이제 착한 역할은 안 해도 된다는, 배우로서 해방감과 자유를 안긴 작품”이었고, “‘여배우들’을 통해서는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촬영할 때는 체력적으로도 무척 힘들고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지만, 작품을 마친 뒤 작품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지금과 같은 순간이 배우로선 가장 행복한 때인 것 같다”고 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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